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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근 작가의 감자꽃 고향/ 해설 김광한(소설가 문학평론가)

by 山海鏡 2019. 7. 30.

김동근 작가의 감자꽃 고향

해설 김광한(소설가 문학평론가)


잡설(雜說)

명말 청초(明末淸初)에 김성탄(金聖嘆)이란 평론가가 있었습니다. 중국문학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지요. 그분의 간단한 이력을 보면 이름은 인서. 성탄은 호. 본명은 장채였으나 양자로 가서 개명했습니다. 1661년 학생운동에 연루되어 처형당했지요. 그는 당시 통용되던 상식을 뛰어넘어 자신의 안목으로 여러 책에 대해 독창적인 평론을 했습니다. 그는 중국 문학의 걸작으로 〈장자 莊子〉·〈이소 離騷〉·〈사기 史記〉·〈두시 杜詩〉·〈수호전〉·〈서상기 西廂記〉를 꼽아 이들에 '재자서'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명대의 이지(李贄) 이래로 통속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부 문학론을 한층 발전시켰지요.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구성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등의 그의 주장은 근대적인 비평의 싹이라 할 수 있으나, 이를 계승한 평론가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분의 평론을 살펴보면 오히려 원문보다 더 사실적이고 와닿는 독창적인 내용이 많아서 많은 사람이 즐겨 탐독했습니다. 이분은 연애소설인  앵앵전(鶯鶯傳)을 평정했는데 그 문장과 내용이 매우 아름다워서 한두 줄 소개를 할까 합니다.


우리들 인생의 즐거움 33가지
먼 여행을 가던 친구 둘이서 어느 날 장맛비를 맞아 피할 데가 없나 두리번거리다 보니 허물어져 가는 폐사(廢寺)가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 절에 몸을 쉬면서 비가 갤 때를 기다리니 좀체 그칠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상심하던 차에 서로 지나간 시절에 겪었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 인생의 즐거움 33가지입니다. 아주 오래된 시절이라서 누구나 가난했고 없을 때라서 물질에 대한 탐욕보다도 서로 간에 오가는 정에 얽힌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오래간만에 벗이 찾아왔는데 보아하니 남루한 것 같고 뭔가 요구할 것 같은 생각에서 아내 모르게 얼마간의 돈을 그의 품속에 넣어주었더니 고맙다면서 슬그머니 빠져나가더란 이야기를 하면서 후렴에 <아 이 또한 즐겁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러자 한 친구가 어느 집을 갔더니 친구의 아들이 명랑하게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성인의 구절을 낭랑하게 외우는 것을 보니 <아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할 손가>라고 댓구를 했습니다. 모두가 가난하지만 정겹게 사는 이야기들이 주가 되는 것이 33가지였는데 이 글은 훗날 임어당 선생이 <생활의 발견>이란 수필집에 기록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시를 짓고 지은 시를 돌려가면서 읽고 평석을 하고 술잔을 기울이는 신선 같은 놀음을 삶의 즐거움으로 받아드렸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제 나라 글자도 해득하지 못하는 무식쟁이들이기에 글이란 배운 사람만이 즐기는 놀이의 한 종류이지요. 일본의 경우, 도꾸가와 막부가 에도(江戶)로 수도를 옮기고부터 에도 시대가 됐는데 여전히 무사 계급을 떠받드는 풍조에 따라 일반 서민들에게는 이렇다 할 오락이 없었습니다.


다이묘(장원지방 군주)에 속한 무사들과 주민들 간의 딱딱한 분위기 속에 낭만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호적이란 다이묘에 적힌 고용살이하는 사람들의 명부뿐이었지요 이 명부에 없는 사람들을 무적자로 취급되어서 취직이 안 되고 사람대접을 못 받아 범죄자로 전락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 범죄자를 집단 수용한 곳이 사금도(沙金島)란 금이 나오는 섬들이었습니다. 여기는 특수한 세계라서 탈출하려야 탈출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곳인데 이곳을 소재로 마스모도세이초(松本淸張)같은 이는 범죄자의 탄생이란 추리소설을 써서 지가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그쪽의 에도시대의 시작이 우리나라에서는 광해군이나 효종 시대가 됩니다.


 이 시대의 생활상을 그리기 위해 미야베 미유키란 유명한 여류작가가 당시의 구전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많은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문화를 이분한 국화와 칼의 작가 루스베네딕토 선생의 말대로 일본은 국화를 내보이면서 칼을 숨겨두는 형태와 무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서민들, 그로 인해 낭만적이고 인간 냄새 풍기는 이야기가 거의 없어요. 일본인들의 특징인 발끈하면 무슨 일을 저지르는 특성 때문에 툭하면 할복자살한다고 소란을 피우고 결백을 증명한다고 배를 가르는 것은 좋은데 여기저기 피가 튀고 창자가 흘러나온 온전치 못한 시체를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정서가 있을까요? 아쿠다카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라쇼몽(羅生門)에 나오는  무사들의 칼부림에 처참하게 죽어가는 살벌한 민생 속에 정서란 끼어들 틈이 없었지요.


우리 한국은, 아니 김동건 선생님이 쓰신 글은 한국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국 이전의 조선에 대한 글이에요. 그 조선에는 칼이 없었어요. 칼이 없다 보니 칼부림하는 일도 없었습니다.다만, 가난과 기근 속에 살아가는 먼저 살다간 조상들의 생존 속에 핀 아름다운 생각과 행동들이 지금 아스라이 나이 드신 분들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김동근 선생이 간추려서 그 시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알려 물질문명 속에 더 가지려고 아귀다툼하는 통에 인간성을 상실한 것들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아쉬움을 향수란 이름을 빌려 기록한 내용이 바로 감자꽃 고향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이야기 시작

감자꽃 고향은 시인 권태용에 대한 글입니다. 1918년 충북 충주의 칠금동에 낳아 33세를 살다간 시인을 통해서 감자꽃을 중심으로 알알이 박힌 추억들을 끄집어내어서 감자란 식물과 연관지어서 우리네 살림을 알려주는 내용인데 비단 감자꽃에 대한 것도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감자알처럼 땅속에 박힌 먹을 것에 대한 학구적인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지금 연세가 어지간하신 작가의 회고록과 같은 이야기들을 마치 누에가 실을 풀어내듯이 줄줄이 풀어가면서 인간의 현존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삶의 기쁨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들을 고전(古典)에서 발취하기도 하고 풍월 속에 만져지는 이야기들을 구성지게 풀어내 읽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읽는 이들은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같이 신기할 테지만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뼈아프고 슬프고 회한 어리고 때로는 감동적이고 우수를 끌어내 내가 지금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것에 대한 반성을 일으키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김동건 선생의 글에는 많은 사람의 생존 연대가 나와요. 어느 시대에 태어나서 몇 년 살다 갔다는 것인데 시대가 오래될수록 개인의 삶의 수명이 한심할 정도로 짧은 것은 그만큼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서겠지요. 예를 들면 한화운 같은 문둥이 시인의 짧은 생을 통해서 그가 겪은 괴로움과 그 시대의 특성과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을 통한 교훈 같은 것을 말해둠으로써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감각을 일깨워주고 인간의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그르쳐주는 어른 스런 모습을 선생이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인물 중심의 역사기록이라서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와 인물이 어떻게 활동했는가를 시대에 맞게 구분했습니다. 그래서 열전(列傳)이라고 하지요. 김동근 선생의 수필집에는 많은 분의 생존연대가 나와요. 누가 몇 년 살다가 죽었다. 그 사람이 사는 동안에 무슨 일을 했는가? 사람의 일생은 태어나 병들어 죽는 것(生老病死)인데 태어나 사는 날까지여서 개인의 인생이고 그 다음부터의 세월은 남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월 동안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후대에 남을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을 김 선생님이 글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감자꽃 고향에는 많은 인물과 인물과 연관된 지역, 그리고 한국인들이 그동안 살아온 세시기(歲時記) 같은 것이 들어차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물, 생소한 인물, 그리고 종교적인 수양방식 등, 모택동의 아들과 친했던 충청도 사람, 조선조 신분을 떠나 사랑을 나눴던 홍랑과 최경창의 이야기, 성철 스님 그리고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 남가일몽(南柯一夢)에 나오는 주인공 순우분, 그리고 침중기(沈中記)의 노생 판사 생활하다가 잘못된 판결을 하여 양심을 더럽힌 것으로 생각 그길로 출가해 엿장수 생활을 하면서 득도한 이효봉 스님, 무소유를 지키면서 삶을 정리한 법정 스님, 절구통 스님 등등 고승들의 일화 속에 담긴 인생의 참된 가르침을 막힘없이 술술 풀어쓰신 김동근 선생님은 분명 우리 시대의 스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과 같은 인생의 허망함을 이야기하는 많은 용어, 생소한 인물과 단어에 대한 해설이 선생님의 체온처럼 따뜻하게 가슴에 와닿습니다. 대저, 지식이란 남의 써놓은 글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혹은 수양을 통해 습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을 많은 이들에게 전할 방법은 작가 개인의 완득한 인격과 종합적인 관찰을 통한 중용에 있을진대 선생님은 어려운 난제를 쉽게 풀어헤치는 남이 못 가진 노하우를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때 여자 빨치산으로 활약한 정순덕, 정치계의 거물 유진산(柳珍山)과 친구였던 사회주의자 이 현상 등등 불우하게 살다간 사람들을 통해서 오늘의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를 넉넉한 문체로 가르쳐준 참으로 어른스러운 수필의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