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문 학/신앙 에세이7

빛과 그림자 골목길을 돌아서자, 그는 나보다 먼저 저만치 앞서 휘청거리며 서 있고, 등 뒤로 명랑한 살굿빛 해가 내 어깨에 볼을 비비며 따라왔다. 나는 페스트푸드점 한쪽 탁자에 앉아 빵과 몇 모금의 우유로 간밤의 피곤과 허기를 달랬다. 이렇게라도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자유로이 다닐 수 있음을 감사했다. 면회 시간에 맞추어 병동으로 돌아왔을 땐 대기실의 보호자들은 이미 복도에 나와 있었다. 모두 초조하게 벽시계를 보거나 출입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창문 너머로 미동도 없는 환자의 침대 주변을 의료진들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뇌혈관 질환의 사망률은 암, 심장질환, 코로나, 폐렴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뇌혈관 질환은 젊은 20대부터 발생하고 진행되기 때문에 젊을 때부터 좋은 생활 습.. 2024. 2. 27.
빛의 소리 빛의 소리 황영원 하늘과 땅의 경계뿐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물조차 식별할 수 없는 참담함, 달도 별도 없는 그믐의 밤하늘은 먹에 가깝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와 별 몇 개 박혀있는 밤하늘은 보석처럼 더 깊고 푸르다. 딥불루(Deep Blue)는 한색(寒色) 계열로 차분하고 냉정함을 지닌 이지적인 색이다. 나는 도회지의 희뿌연 삶에서 고흐의 같은 청량한 밤을 꿈꾼다. 지난해 초여름 1박 2일 모임이 울산에서 있었다. 낮에 태화강 십리대숲을 둘러보고 저녁 무렵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아늑한 교회 수련원에 도착했다. 목사님은 일찌감치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해놓고 계셨다. 저녁을 겸한 행사를 마치고 일행은 정갈하게 마련된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자정 넘어 소등하며 우연히 바라본 정원은 실루엣만 어렴풋이 남기고 정.. 2023. 2. 26.
해마의 뿔 향기로운 뿔을 가진 동물이 있다면 나는 사슴을 먼저 떠올린다. 향낭은 없지만 나뭇가지처럼 갈라지며 힘차게 위로 뻗어 오르는 뿔의 기상은 호기롭다. 무엇보다 수사슴이 걸음을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자태에서 고상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사슴의 뿔은 매년 4~5월 무렵 떨어져 나가고 새 뿔이 난다. 처음에는 털로 덮인 연한 피부에 싸여 있으며 속에는 혈관이 많은데 이것이 한약재로 귀하게 쓰이는 녹용이다. 녹용은 청명을 달포쯤 지나서 소만과 망종 사이에 자른다고 한다. 자연 상태로 차츰 각질화되면 사슴은 나무나 바위에 문질러서 피부를 벗겨내고 뿔을 다듬는다. 바닷속에도 뿔이 있는 물고기 해마#1가 산다. 그리스 신화의 켄타우루스는 인간의 하반신이 말인 데 반해 해마는 말의 하반신에 꼬리가 달려있고, 유니콘처럼 길.. 2022. 7. 30.
후리포(갈릴리 어부) 후리포는 내 고향 울진에 있는 후포항의 정겨운 옛 이름이다. 오랫동안 그리 불리던 터라 귀에 익어 지금도 어색하지 않다. 혹자는 후리포의 어원을 옛 지명 휘라포(輝羅浦)에서 찾으며 '비단바다'라고 말하지만, 동해의 물결은 비단보다 거칠고 때로는 난폭하다. 그러나 고깃그물을 깁는 노인들의 성성한 백발이 미풍에 흔들리면 바다는 몸을 잘게 부수며 정어리 비늘처럼 일어선다. 신비로운 바다 휘라포는 한글 창제 이전에 한자를 잠시 빌려 쓴 음차(音借)#1로 보이므로 말은 '후리포'라 부르며 글만 '휘라포'(輝羅浦) 로 적었을 법하다. 어머니 병수발을 위하여 후포에 내려갔을 때 일이다. 7번 국도를 차로 달리면 아침 해는 바다 위에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따라온다. 이 생경한 풍경이 익숙해질 무렵 벗들도 가끔 만났다... 2021. 5. 29.
종소리(흑백사진) 종소리(흑백사진)/ 황영원 손에 쥐여준 종 줄을 잡았을 때 내 몸은 한길이나 솟구쳐 올랐다. 종소리와 함께 하늘 두레박이 안아 올리는 공중부양 사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미풍에 굼실거리는 청보리밭과 그 너머 멀리 수평선에 걸린 하얀 돛단배! 나직한 해조음에 묻혀오는 교회 종소리! 내 순수에 찍힌 추억의 첫 장이다. 어머니는 앨범을 보시다가 그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새댁이 때 예배당에 업고 가면 밭에서 무 뽑듯이 권사님들이 와서 쏙 뽑아 갔따꼬! 순뎅이는 울지도 않고 이 사람 팔에서 저 사람 팔로 자꾸 옮겨 가잖나? 나중에는 어디 있는지 찾아도 안 보이고 젖은 퉁퉁 불어오고, 나도 한번 안아보고 싶은데 참말로 속이 상터라..." 어느 권사님의 팔에 안겨있는 조그만 내 사진을 가리키며 회.. 2021. 3. 27.
꿈꾸는 개복치 꿈꾸는 개복치 / 황영원 바다를 베고 누웠다. 갈매기가 이리저리 밟고 다녀도 마치 난파선 잔해처럼 죽은 듯 고요하다. 맑고 파도가 잔잔한 날 해바라기 하는 개복치를 서양에서는 오션 썬피시(Ocean sunfish)라 부른다. 부레도 없는 물고기가 어쩌면 그리도 태연하게 하늘 끝 한 자락을 덮고 풍찬노숙을 한단 말인가! 선장인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어린 시절 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다가 멀리 나갔을 때를 생각해 본다. 돌아보니 붐비던 백사장도 피서객 소리도 실처럼 아득하고 흰 구름 한 조각이 해변을 쓸고 있었다. 가끔 외마디 소성을 지르던 계집애들 소리마저 잠잠하다. 바다는 가늠하지 못할 깊이로 검푸르게 출렁대고 나는 부표처럼 외롭고 목이 말라 따가운 얼굴에 찬 바닷물을 끼얹었다. 주변에 보이는 건 하얀.. 2018.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