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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민족시인 7위 분향제

by 山海鏡 2018. 5. 18.


항일 민족시인 7위 분향제
(2018. 5. 25)


이상화, 한용운,

심연수, 윤동주, 이육사,

김영랑, 오일도

 

 


   


 



한국문예춘추문인협회
cafe.daum.net/plfltl





1. 이상화 李相和 시인
   호: 尙火, 想華, 無量, 白啞 (1901. 4. 5 ~ 1943. 4. 25)
   불같은 항일정신 한겨레의 혼을 일깨운 저항문학의 총아


연대기:
1901년 4월 5일(음) 대구시 서문로 2가 12번지 李時雨의 차남으로 출생

1907 ~ 14년 8세 때 부친 작고, 백부 이일우의 사숙에서 공부

1915 ~ 18년 경성중앙학교(현 중동) 입학, 수료1919년 3.1운동 당시 백기만 등과 함께 계성학교 학생 동원과 독립선언의 선전문을 작성하여 등사하는 등의 시위를 준비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주요인물이 검거되자 서울로 피신, 10월 백부의 권유로 서온순과 결혼

1921년 5월경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와 만나 <백조>동인이 됨

1922년 『백조』창간호에 <말세의 희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프랑스 유학을 가려고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스에서 2년간 수학, 이 시절에 함흥 출신의 유학생 柳寶華와 교제

1923년 관동 대진 직후 한국인 학살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피신1924년 관동 대지진의 충격으로 프랑스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 서울에 거처하며 <백조>동인들과 교제1925년 <빈촌의 밤> 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경향파 문학(KAPF) 가담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개벽』 70호에 발표

1927년 의열단 사건에 연루되어 붙잡힘, 또 장진흥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 관련 고문과 폭행을 당함
1935년 중국으로 건너감

1936년 귀국 후 체포되어 옥고

1943년 3월에 병원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

1943년 4월 25일 오전 8시 45분 경상북도 대구 자택에서 별세


주요작품: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가상>, <몽환병> 외 다수



2. 한용운 韓龍雲 시인
   본명: 유천 裕天 (1879. 8. 29 ~ 1944. 6. 29)
  독립운동가 겸 승려, 시인, 일제 강점기 시집『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했다.


연대기:
본관 청주(淸州), 호 만해(萬海·卍海),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 출생, 집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
1896년 오세암(五歲庵) 들어감
1905년 백담사(百潭寺)의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 법을 받음
1908년 전국 사찰대표 52인,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설립,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시찰
1910년 중국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방랑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 교편, 범어사에서 『불교대전(佛敎大典)』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 주장
1916년 서울 계동(桂洞)에서 월간지 『유심(唯心)』 발간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 서명, 체포 3년형 복역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출판,

1927년 신간회(新幹會)에 가입

1928년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 월간지 『불교(佛敎)』를 인수,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 『조선일보』 연재
1937년 항일단체 만당 사건(卍黨事件) 배후자로 검거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동(城北洞)에서 중풍으로 별세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됨


주요작품: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흑풍>, <후회> 외 다수



3. 심연수 沈連洙 시인
    (1918. 05. 20 ~ 1945. 08. 08)
 짙은 민족의식과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암울한 식민지 상황에서 광복의 새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일제 암흑기에 문학으로 민족의 저항 혼(魂)을 일깨우고 망국의 한을 달랬다.


연대기:
1918년 5월 20일 강릉시 경포면 난곡리 399번지(현 강릉시 난곡동 399)에서 삼척 심 씨 심운택과 부인 최정배 씨 사이에서 5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

1925년 3월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

1930년 만주 간도 밀산을 거쳐 신안진으로 이주

1935년 만주 간도 연길현 길안툰(현 용정) 이주

1936년 용정 동흥소학교 5학년 편입

1937년 3월 4일 용정 동흥소학교 졸업

1937년 용정 동흥중학교 입학

1940년 4월 <만선일보>에 ‘旅窓의 밤’ 발표, 8월 10여 일간 고향 강릉 방문

1940년 12월 5일 용정 동흥중 졸업

1941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감, 4월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 입학

1943년 7월 13일 일본대학 졸업

1943년 겨울 일제의 학병 강제징집을 피해 만주로 귀환

1943년 신안진과 영안현에서 소학교 교사로 근무

1945년 용정 시내 예배당에서 백보배와 결혼

1945년 8월 8일 영안현에서 용정으로 오던 중 왕청현 춘양진에서 일제에 의해 피살됨

1945년 11월 시신 수습해 용정 토기막 뒷산에 안장2000년 7월 ‘20세기 중국 조선족 문학사료전집 제1집 심련수문학편’ 출간


주요작품:<소년아 봄은 오려니>, <등불>, <지평선>, <만주>, <눈보라>, <국경의 하룻밤>,
<돌아가신 할아버지> 외 다수



4. 윤동주 尹東柱 시인
    (1917. 12. 30 ~ 1945. 2. 16)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 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 옥중 요절했다.


연대기:
1917년 12월 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부친 윤영석과 독립운동가, 교육가인 규암 김약연 선생의 누이 김용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
1925년 명동 소학교 입학. 급우는 송몽규, 문익환, 외사촌 길정우 등이 있음
1929년 송몽규 등의 급우와 함께 벽보 비슷한 '세명동'이라는 등사판 문예지를 간행
1931년 3월 25일, 명동 소학교를 졸업. 중국인 소학교 6학년에 편입
1932년 캐나다 선교부 경영 미션계 은진중학교에 입학. 교내 문예지를 발간 
1934년 <삶과 죽음>, <초 한 대>, <내일은 없다> 작품에 날자 명기를 시작

1935년 은진중학교에서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에 편입. <남쪽 하늘>, <창공>, <거리에서>, <조개껍질>, 학우지 <숭실활천> 제 15호에 시 <공상> 게재.
1936년 숭실중학교에 대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항의 자퇴.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 편입. 동시 <오줌싸개지도>, <병아리>, <빗자루> 발표
1937년 졸업반인 5학년으로 진급. 백석 시집 <사슴> 필사본 만듦. 동시 <거짓부리>
1938년 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 연희전문 문과 입학.

1941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졸업 기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미간. 일제의 탄압에 못 이기고, 도일을 위해 성씨를 히라누마로 창씨 함

1942년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 입학. 경도 동지사대 영문학과 전입학
1943년 첫학기 마치고 귀향 직전 사상범으로 체포 교토 키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됨
1944년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2년형(3년 구형) 언도받아 큐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1945 2월 16일,오전 3시 36분 복강형무소에서 옥사


주요작품: <십자가>, <또 다른 고향>, <길>, <별 헤는 밤>, <서시>. 산문<종시> 외 다수



5. 이육사 李陸史 시인
   본명: 이원록 源綠 (1904. 4. 4 ~ 1944. 1. 16)
    일제 강점기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추고 있던 이육사는 일찍부터 각종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의 불꽃을 피웠고, 생애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였다.


연대기:
1904년 5월 18일(음 4.4)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천동 881번지에서 진성 이씨 이가호(李家鎬, 퇴계 이황의 13대손)와 허형(許?)의 딸인 허길(許吉) 사이에 차남으로 출생
1909년 조부 치헌 이중직(痴軒 李中稙)에게서 소학 배우기 시작
1919년 도산공립보통학교(보문의숙을 공립으로 개편) 1회 졸업 
1920년 대구 남산동 662번지 이사. 석재 서병오(石齋 徐丙五)에게 그림 수학
1921년 영천군 화북면 오동(梧洞) 安庸洛의 딸 일양(一陽)과 결혼
1924년 일본 유학
1925년 귀국, 대구 조양회관 중심으로 활동,

1926년 베이징 中國대학 상과에 입학
1930년 첫 시(詩) <말>발표
1931년 ‘대구격문사건’ 연루, 8월 조선일보 대구지국 입사
1932년 조선일보사 퇴사. 난징 근교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 입교 
1933년 4월 1기생으로 졸업(26명), 7월에 서울로 잠입
1934년 군사간부학교 출신 드러나 경기도경찰부에 구속, 6월 석방, 시사평론 다시 집필 시작
1935년 정인보 댁에서 신석초 만나 친교, 본격적으로 시(詩) 발표
1937년 서울 명륜동에서 거주, 1939년 종암동 이사, 8월 <청포도> 발표
1940년 시 <절정>, <광인의 태양> 등 발표
1941년 딸 옥비(沃非) 출생, 4월 부친상, 가을에 폐 질환으로 성모병원 입원
1943년 4월에 베이징으로 감, 충칭과 옌안 행 및 국내 무기 반입 계획 세움.

1943년 7월 모친과 맏형 소상에 참여, 늦가을에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 
1944년 40세 1월 16일 새벽, 베이징 네이이구 東廠胡同 1호에서 옥사


주요작품: <광야>, <청포도>, <절정>, <자야곡> 외 다수



6. 김영랑 金永郞 시인
    본명: 윤식 允植 (1903. 1. 16 ~ 1950. 9. 29)   

 그의 작품들은 목적의식이 담긴 시를 거부하고 이상적인 순수 서정시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어 속을 흐르는 조용한 저항의식이 담긴 민족주의적 시를 쓰기도 하였다. 주로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살린 섬세한 시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연대기:
1903년  아버지 김종호 선생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다니면서 13세의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1년 만에 사별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이때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음.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洪思容)·안석주(安碩柱)·박종화(朴鍾和) 등의 선배와 정지용(鄭芝溶)·이태준(李泰俊)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 화백 이승만(李承萬)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움
1919년 3·1운동 때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 6개월간 대구형무소서 옥고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 이 무렵 독립투사 박렬(朴烈), 시인 박용철(朴龍喆)과 친교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1925년 개성 출신 김귀련 金貴蓮과 재혼,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냄
1930년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칠수(四行小曲七首)」를 발표
1948년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낙선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 역임, 국악이나 서양 명곡을 즐겨 들었고 운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영위
1950. 9. 28 서울 수복 당시 유탄에 맞아 사망


주요작품:
<모란이 피기까지는>, <가늘한 내음>, <꽃>,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 마음을 아실 이>, <오월>, <독을 차고>, <두견>,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이>, <거문고> 외 다수



7. 오일도 吳一島 시인
    본명: 희병 熙秉 (1901. 2. 24음 ~ 1946. 2. 28)
 오일도 시인의 시는 기교보다 감정의 자유로운 표출에 역점을 두었다. 생전에 시집을 내지 못했지만, 순수한 시 전문잡지인 『시원』을 창간하여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연대기:
1901년 경북 영양 감천, 천석꾼 부친 오익휴(吳益休)와 모친 의흥박씨(義興朴氏)사이에 출생14세 때까지 향리에서 한문 공부
1915년 연상의 여인과 결혼, 영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서 공부
1922년 도일, 1년간 사설강습소에서 수학
1923년 릿쿄대학 철학부 입학
1925년 『조선문단』 1월호에 <한가람 백사장에서> 발표로 등단
1929년 릿쿄대학 철학부 졸업, 귀국 및 시작 활동
1932년 근화학교에서 1년간 교사로 근무
1935년 맏형(熙台) 희태로부터 사재를 얻어 시 전문 문예지 『시원』을 창간
1936년 『을해 명시 선집(乙亥明詩選集)』 발간
1938년 조동진 추모 유고집 『세림 시집』 간행, 『을해 명시 선집』 간행
1942년 낙향 <과정기> 등의 수필을 쓰면서 칩거
1946년 간암으로 별세, 그의 시 작품은 유고 형태로 조지훈에게 건네짐

1973년 『현대시학』에 유고가 특집으로 실림
1976년 유고 시집 『저녁놀』 발간


주요작품: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노변의 애가>, <내 창이 바다에 향했기에>, <가을하늘>, <코스모스 꽃>, <지하실의 달>, <봄 아침>, <봄비>, <바람이 붑니다>, <시월의 정두원>, <송원(松園)의 밤>, <별>, <도요새>, 한시와 한역시 외 다수


참고문헌

키위백과, 다음백과

聽松 김송배, 시원과 오일도 시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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