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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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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리과원

by 山海鏡 2020. 6. 27.

상리과원
                                                                                                                                     서정주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洛東江) 상류(上流)와도 같은 융융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골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질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네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팩이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ㅅ굼치에까지도 이쁜 꽃숭어리들을 달았다. 맵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새끼들이 조석(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만(數十萬) 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구치고 마짓굿 올리는 소리를 허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當然)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할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무쳐서 누어 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어서, 때로 가냘푸게도 떨어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닢사귀들을 우리 몸 우에 받어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山)들과 나란히 마조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油頭) 분면(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黃昏)의 어둠 속에 이것들이 자자들어 돌아오는-아스라한 침잠(沈潛)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한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서뿔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서름 같은 걸 가르치지 말일이다. 저것들을 축복(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행용 나즉히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 귀소(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山)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던,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르쳐 뵈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鍾) 소리를 들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