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조화의 신비
/ 법정
이 산골에 들어와 살면서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고 지내는 일이 많다.한동안 일에 밀려 밤하늘의 달이나 별에도 미처 눈길을 보내지 못했다.며칠 전 모처럼 휘영청 밝은 달을 대하고 오늘이 열나흘쯤 되었는가 싶었는데 그날이 열이레임을 뒤늦게 알았다.
신문이나 방송도 접하지 않으니 날짜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또한 산중에 달력이 없으니 가는 세월을 알 수가 없다.
대매산(大梅山)의 법상(法常) 선사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법문을 듣고,몇가지 곡식 종자를 가지고 인적이 미치지 않는 깊은 산중에 들어가 초암(草庵)을 짓고 살면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어느날 길을 헤매던 나그네가 선사의 초암앞에 이르러,이 세상 사람같지 않은 몰골을 보고 선사에게 물었다.
"이 산중에 들어와 사신지 얼마나 되십니까?"
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몇해인지는 모르지만,둘레의 산이 푸르렀다가 누레지고 다시 푸르렀다가 누레지는 것을 보았을 뿐이오.그렇게 거듭하기 한 30여차례나 되는지 모르겠소."
山中無日曆 不知何歲月
달력이 없는 산중에 사니 가는 세월을 어떻게 헤아리겠는가.설사 벽에 달력이 걸려 있다 할지라도 똑같은 날 비슷한 일과 속에 살다보면 세월을 헤아릴 일이 없다.
우리가 시간과 날짜를 기억하고 의식하는 것은 그 시간과 날짜에 매달려 살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시간 자체는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닌 그대로의 '있음'이다.
그 있음에 실려 살아있는 것들이 생로병사하고 만물이 달라져가고 변해가는 것이다.수행자들은 그런 시간의 의식에서 벗어나 투명한 단순성 안에 살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의 나이조차 까맣게 잊은 채 순간 순간 무심히 살아갈 뿐이다.
지금이 10월 중순인데 시장에는 벌써 내년 달력이 깔리고,설 연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표를 예매하고 있다.성급한 현대인들은 세월을 미리미리 가불해서 쓴다.다시 말하자면 현재 속에서 미래의 몫까지 살아가는 것이다.이러니 어찌 벅차고 바쁘지 않겠는가.그저 바빠바빠 하면서 한세상을 후딱 지나쳐버린다.
한 생애에서 남는게 무엇일까? 지식,기능,지위,명예,재산,자녀들..........? 그러나 그것들은 본질적인 자기 몫이 못된다.자신의 영혼 말고는 어디에도 기댈곳은 없다.이몸도 한때의 집이고 옷에 지나지 않는다.집과 옷은 낡으면 허물어지고 해져 마침내 버려지고 마는 것.
그러나 영혼은 생명의 뿌리요 바탕이다.그것은 맑고 투명함이며 순수이고 빛이며 또한 환희이다.그러니 영혼을 가꾸는 일은 밝음과 투명함과 순수와 빛과 환희로 채워진 삶이다. 일상적인 삶에 이런 것들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충만한 삶을 이루기 어렵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영혼이 하잘 것 없는 시시한 일에 내던져져 먹고 마시고 즐기고 다투면서 물질의 노예로 한평생을 지내고 만다면 이 얼마나 안타깝고 한심스런 일이겠는가.
자연은 그 자체가 노래요,음악이며 율동이요,춤이다.강과 대지와 산과 바다와 나무가 꽃과 새와 바람과 구름은 살아 숨쉬며 흐르고 노래한다.그러면서도 시기하거나 다투지 않고 서로 도우면서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질만능의 현대문명에서 비롯된 온갖 질환과 오염에서 우리가 헤어나려면 새로운 문명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인간의 영원한 기댈 곳인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그 아름다움과 조화의 신비를 지켜보고 배워야 한다.그러나 일상의 우리들은 그 강과 대지와 산과 바다,그리고 나무와 꽃과 새와 바람과 구름을 바로 눈앞에 대하고서도 묵묵히 지켜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조화의 신비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그저 먼산 바라보듯 건성으로 스치고 지나갈 뿐.
오늘날의 우리들은 대부분 순간적인 충동과 변덕과 기분과 습관과 둘레의 흐름에 지배당하면서 지극히 감각적인 삶을 이루고 있다.남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삶의 몫과 양식이 다른 나마저 그렇게 따라가며 흉내낸다.
우리가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무심코 익혀왔던 그릇된 습관부터 버려야한다.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던 것만을 받아들일게 아니라, 꼭 내게 필요하고 긴요한 것만을 가려서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
언제나 변함이 없고 구태의연한 틀에 갇혀서 살게 되면 생명의 율동과 환희를 누릴 수없다.내 자신의 삶을 거듭거듭 향상시키고 심화시킬 것을 다지고 그것을 일상적인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된다.자신도 모르게 굳어진 고정관념의 그늘에서 훨훨 털고 일어서라.
행복의 조건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단순하고 소박한 삶과 고양된 영혼이다.머리는 무한한 창공에,발은 굳건한 대지에,단순 소박한 삶과 드높인 영혼이 우리들 삶에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당신 자신을 안팎으로 살피라.무엇이 되어야 할것인가를 당신 스르로 만들어야 한다.강과 대지와 산과 바다,그리고 나무와 꽃과 새와 바람은 저절로 이루어진게 아니라, 어려운 여건들을 극복하면서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다.그러면서도 우주적인 조화와 질서를 어기지 않는다.
홀로 있는 시간은 참으로 가치있는 삶이다.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라.그렇지 못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맹목적인 겉치레의 흐름에 표류하고 만다.홀로 있어야만 벌거벗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성찰할 수 있다.이래서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만드는 귀중한 시간이다.
세월은 지나가는 것이지 오는 것은 아니란 말이 있다.일리 있는 말씀이다.우리들 삶의 한순간이 지금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그러니 무가치한 일에 삶을 낭비하지 말아야한다.
자연을 찾아 굳이 밖으로만 눈을 돌릴 필요는 없다.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원초적인 자연이 깃들여 있다.
15세기 인도의 영적인 시인 까비르는 이와 같이 읊었다.
꽃을 보러 정원으로 나가지 말라
그럴 필요는 없다
그대 몸 안에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의 꽃잎을 달고 있다
그 수천의 꽃잎 위에 앉으라
그 수천의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안에서의 나
정원 밖에서도
늘 피어 있는 그 아름다움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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