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두 사람의 혼례를 축하해 주시려고 아침 일찍부터 원근 각처에서 나오셔서 이렇게 예식장을 가득 채워주신 하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생각이 모자라고 입이 둔한 제가 어떻게 이런 중차대한 자리에 설까 망설였지만, 자유분방하여 주례 없이 식을 올리는 요즘 젊은이들과 다르게 여기 서 있는 두 신랑 신부는 예의가 바르고 어른을 공경하는 기특함이 있어 청을 흔쾌히 승낙하게 되었습니다.
제 주례사는 길지 않아 연회장으로 가시는 동안 모두 끝나고 맙니다. 하객 여러분도 잠시 귀를 기울여 두 사람 결혼의 확실한 증인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결혼의 정의는 아마 이럴 겁니다. <두 젊은 남녀가 부모의 슬하를 떠나 정식으로 부부가 되어 새 가정을 이루는 것> 이것은 우리와 같은 초혼일 경우에만 해당되겠지요? 그러나 모두 잘 아시는 이런 진부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이시간 이후부터 과거 지나온 모든 옛 기억은 모두 잊어야 합니다. 당사자는 물론 여기 오신 모든 분들도 지금 이순간 이후부터 일어나는 것들만을 지켜보겠다고 동의 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결혼이야말로 인생 일대의 전환점이요, 두 사람이 이 시간 새 출발을 하면서 맺어지는 성스러운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잠시후 여러분들은 이렇게 기쁘고 기뻐야 하는 날 주례는 어째서 쓴소리만 하는가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 가면서 좋은날만 있는 게 아님을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좋은 날은 저들이 다 알아서 할테고, 험난한 폭풍우가 불어 닥칠 때는 이 말이 나침판이 되고 때로는 보약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보약의 처방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예전에 차가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뜨거워야 하는 것들이 있고, 예전에 뜨거원던 부분은 차가워져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의미 없던 것들이 이제부터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러분은 현명하여 이미 다 아실 것입니다.
예전에 땀 흘리지 않고 시원한 그늘에서 쉬면서 지냈다면, 이제는 뜨거워져야 합니다. 허리띠를 꽉 묶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예전에 이런저런 구경도 다니면서 나의 즐거움을 쫓아 바쁘게 돌아다녔다면, 이제는 가족을 위해 집으로 속히 돌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모르고 살아왔던 이십여 년의 인생의 이력서가 내 안으로 풍덩 들어왔기 때문이며, 가족을 위한 신성한 인생의 의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개미가 열심히 일합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돌보며 해로운 적이 나타나면 날개 아래 그들을 숨깁니다. 우리는 이러한 한낱 미물이나 작은 동물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하루의 해가 뜨고 짐과,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사계절이 있어서 꽃이 피고 열매 맺음을 보면서, 모든 일에는 시기와 때가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배웁니다. 그래서 자연은 무언의 스승입니다.
식물이 꽃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이보다 더 많은 능력을 받았습니다. 비단 자녀를 생산하는 생리적인 것 뿐 아니라 물질적 정신적 활동과 높은 이상의 추구도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묻어두지 말고 생업으로 삼아 그것으로 인하여 먹고 입으며 기쁨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부지런히 즐겁게 일하면 근자소복, 복을 누리며 넉넉하게 됩니다.
오늘부터 어른이 되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상투를 올리고 머리를 올리는 것이지요. 어른이 되어 세상을 바르게 살려면 투기나 도박이나 요행을 바라서는 안됩니다. 이런 불한당 놀이는 한 가정의 패가망신에 그치지 않고 두 가문과 선친들의 명성에까지 누를 끼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례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쟁기를 붙들고 뒤를 돌아보지 마라!"입니다.
뒤 돌아보는 순간부터 쟁기의 보습이 똑바로 나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밭을 제대로 갈수 없습니다. 결국 곁길로 나간 흔적이 흉하게 남게 됩니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마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본다면 십중팔구 매듭지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반드시 문턱을 넘겠다는 오기를 가져야합니다. 바로 이것이 보약입니다.
여기 신랑신부의 등 뒤에 계신 하객으로 오신 분들은 이미 이런 보약을 드시고 오셨을 겁니다. 그러나 아직 들지 못하신 분들은 오늘 한 봉씩 거저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직업을 가지고 조금 해 보다가 벗어 던지고, 뜸 들기 전에 솥뚜껑을 열어 버리면 선밥이 되기에 십상입니다. 뜸이 들고, 길이 나기 전에, 씹어 단맛이 생기기 전에 맛이 없다고 투정하는 경솔함을 버려야 합니다. 제 말이 틀렸는지 한 번 실험해 보고 나서 주례에게 따져도 좋습니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아직 결혼이 무엇인지, 가정이 무엇인지? 나이는 들었어도 잘 모르는 사람이 계십니까? 그분은 아마 주례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아서겠지요?
그러면 신랑과 신부는 오늘부터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새롭게 태어난 듯 말씨를 바꾸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씨를 긍정적인 말씨로 바꾸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너나' 이렇게 부르던 것을 이제부터 예를 갖추어 존경하는 호칭을 바꾸어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동전의 양면을 다 볼 수 있으나 가급적 밝은 면을 보며 칭찬을 해야 합니다. 밤이 오면 부정적인 것들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신을 괴롭히기보다 역지사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때라야 다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해 아래서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림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다만 잠시 비켜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여 모자라는 부분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이를 서로 보완하며 인간은 사회를 이루며 삽니다. 그 최소 단위가 가정인 것입니다.
자녀는 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며 신비로운 기쁨의 열매로서 하늘이 내려주신 값진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둘 사이에 얻어진 자식이지만, 재능과 성정이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입니다. 부모는 친밀함으로 자녀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내며,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보며 가꾸어야 합니다.
또한 늙은 부모를 경홀히 대해서는 안됩니다. 자녀를 낳고 길러 보지 않으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누우신 자리가 춥지 않는지 어디 몸이 불편한 곳은 없는지? 내 어린 시절 요람에서 키우며 자리를 옮기던 때를 상기하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내는 시집을, 남편은 처가를 늘 생각하며 조금도 거리낌이나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사위와 며느리도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효의 나침판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례는 서로 사랑하며 의지하며 둘이 한 몸과 마음이 되어 폭풍 앞에서 꿋꿋이 견디는 연리지 나무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제가 문인인 관계로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주례사를 맺을까 합니다.
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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