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손
김진동
두 모녀가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
말을 서로 떠 먹여주며 덩굴손이 되는 것을 보았다
풋풋한 딸은 어머니가 제 말을 드시다가 행여
체하지나 않으실까 염려스러운 듯
천천히 말을 손으로 싸고 표정으로 맺어서
한 입씩 어머니의 눈에 쏙쏙 넣어드리고
어머니는 딸이 주는 말을 받아 드시며
이따금씩 행복하게 미소 짓기도 했다 나는
모녀의 손에서 이야기 꽃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
모녀가 잘 익은 열매를 따 서로 입에 넣어 주듯 하는
정경을 바라보며, 어쩌면
엄마 품에 포근히 묻혀 고사리손을 풍요한 젖가슴에 얹고
꽃잎 같은 혀로 젖꼭지를 말아 물고 앙글거리던 그 아기가
정성스럽게 빚어 들려주는 손의 소리만을 담기 위해,
저 어머니는 짐짓
귓문을 닫아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며 불현듯 내 어머니의 냄새가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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