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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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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 예술

by 山海鏡 2016. 10. 11.

  o 과제유형 : (  C  ) 형
  o 과 제 명 : 1. 교재 10장[취미로 사진 찍기]에는 바르트의 푼크툼 개념을 인용하면서 “사진은 다른 시각적 이미지처럼 말을 건다”(교재 164쪽)고 얘기합니다. 이 내용을 참조하시면서 하나의 사진을 골라 그 사진이 하고 있는 말을 분석해 보십시오.
               2. 과제를 쓰실 때 먼저 분석대상으로 삼으신 사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신 후(A4용지 1장 반 이하), 그 사진은 어떤 말을 어떤 형식으로 걸고 있으며 그렇게 생각하시게 된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 서술해 주십시오.          

서론
  사진은 빛의 물리 ˙ 화학적 성질을 이용한 광학 장치로 사물의 시각적 형상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진을 찍기 전에 빛과 장치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카메라의 출현은 200년 정도로 오래되지 않았으나 그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사진이 지닌 사실성 때문에 신문의 기사나 광고 외에도 각종 기록과 증빙 자료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취미 활동이나 예술의 창작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취미 활동은 우리가 살아가며 일과 휴식 사이에서 활력을 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특히 사진 찍기는 비용뿐만이 아니라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매력적인 취미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적 탐구와 추억을 수집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단체 출사나 전시회를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며 작품 수준을 가늠하는 등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기회도 될 수 있다.
  사진에 대한 애정과 경험이 쌓일수록 사물을 대하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난다. 피사체의 끌림만큼 통찰력과 인내심을 기르고, 자연에 대한 이해와 창작의 영감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막연히 피사체를 향하여 셔트를 누르기 전에 대상의 관찰과 함께 한 걸음 다가서며 자신의 의도를 재차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 된다. 푼크툼(Punctum)이란 프랑스의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세운 개념으로서「찌름」을 뜻하는「punctionem」의 어원에서 비롯되었다. 푼크툼은 관람자가 동일한 사진을 보더라도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경험에 견주어 주관적 의미로 해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스투디움(studium)은 사진을 볼 때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공통된 느낌을 갖는 것, 작가가 의도한 바를 관객이 작가와 동일하게 느끼는 어떤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보기에는 호기심을 유발할 만 한 미적 매력을 내재하고 있을지라도 푼크툼 개념으로 보게 되면 어떤 몸짓이 오히려 관람자로부터 왜곡이나 오해의 소지로 해석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본론 (푼크툼 개념을 이용한 작품의 분석)
<제빵사> 아우구스트 잔더, 1928

1. 작품설명
  작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는 1876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독일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직업별로 분류하고 많은 초상사진을 남겼다. 그의 작품의 방향과 활동의 원동력이 된 것은 사회주의 예술론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같은 시대를 사는 집단의 공통된 이슈와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독일 민중 전체를 대상으로 탐구하는 거대한 실험이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는 아버지와 탄광촌에서 광부 일을 하다가 탄광촌 풍경을 찍으러온 사진작가 슈멕(Schmeck)을 만났고, 그에게서 사진 기술을 배워서 오스트리아 린츠와 독일 쾰른에서 한때 사진관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그가 수집한 인물의 초상은 1910년부터 20년 동안 무려 2,500점이 넘었으며, 1929년 ≪우리 시대의 얼굴 ≫을 출판하고 1936년부터 ≪독일의 국토, 독일의 민중≫이라는 시리즈를 발간하다가 당시 나치 정권으로부터 사상 불온 자로 몰려서 출판과 작품의 전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초상사진을 통해 나무를 보고 숲을 짐작하는 것처럼 집단에 소속된 여러 계층의 군상을 살피면서 어떤 특정한 구조적 오류를 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름 직종을 세분하여 불특정 개인에게 사회적 구성 조직의 역할을 암묵적으로 위임키고, 고유한 이름 대신 이를테면 젊은 농부들, 화가, 변호사, 군인, 중산층 어린이들, 비서, 벽돌공, 서커스 예술가 등 특정 직업의 명칭을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잔더의 이러한 열정이 자신이 남긴 다양한 계층의 인물의 초상은 당대의 풍습과 사조를 또렷이 짐작할 수 있는 훌륭한 역사적 자료가 되었다.
  여기 제빵사라는 작품은 장인의 기질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다만 그가 1928년에 찍었다는 것과 직업이 제빵사라는 것 외에 초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가 사는 지역이 어디인지는 알 길이 묘연하다. 기록연대와 프레임 속의 광선과 복식과 소품을 미루어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인지와 상황만을 짐작할 따름이다. 현장 스케치와 달리 인물사진에서는 대개 동세가 없다. 검은 외출복 바지에 반짝이는 구두를 보면 우스꽝스러운 면도 있지만, 설정 스틸컷이라는 사실을 이내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이 모든 정황을 참작한다면 많은 의미와 정보를 얻는다. 또한, 작가가 주장하고 싶은 의도인 사회 참여와 비판 정신이 모델의 표정과 자세에 개입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품활동을 오래 하다 보면 작품에 자신만은 고유한 색깔이 있고, 또한 자신이 선별한 직업군 부류에 적합한 모델을 물색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였다고 보면, 한 컷의 사진이 많은 관람자의 오감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소통을 위해 그의 특유한 함량의 예비 장치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 제빵사 사진이 건네는 말

  그 첫 번째 말은 분노와 반항의 몸짓이다.
그의 작품 중 하나만 놓고 보면 선뜻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사진을 펼쳐놓고 찬찬히 바라보면 작품 속의 인물들의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무표정이나 째려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쩌면 의도적 설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의 상황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면 더욱 분명하게 느낌이 전해온다.
  우리의 일상이 즐거운 것만 있는 것도 아니며 늘 괴로운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항상 시간의 변화 속에서 흔들리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금 제빵사 모델은 그저 평범한 모습의 얼굴 근육의 이완 상태로 있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스트레스는 특유한 어떤 주름을 만들어 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꼭 얼굴의 이마나 눈가에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미세한 근육의 형태가 변하여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이나 동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입술이 실룩거린다든지, 킁킁 소리를 낸다든지 아니면 경직된 자세 등 보통의 일상의 편안한 상태와는 어딘가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표정관리를 철저히 하여 도저히 상대방에게 노출하지 않는다 해도 신체 밖에 있는 외적 요인 즉, 주변의 사물에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잘 보면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면 주위의 물건이 흩어져 있다든지 아니면 필요 이상으로 정돈하여 자연스러움을 해치는 경우에도 이러한 사실이 미묘하게 드러내게 된다. 다시 말해 마음에 주름을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의 태도와 복장을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주방에서 일하는 두건과 같이 생긴 조리모를 벗어버린 부릅뜬 눈과 주걱을 움켜잡은 긴장한 손목은 당장에라도 들었던 물건을 카메라를 향하여 집어 던지거나 뿌릴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에 펼쳐져 있었던 작업복 옷깃에서 주름을 보이며 마지막 단추를 억지로 채운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어떤 규범이나 명령을 강제로 지키고 있다는 반항심의 발로의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모델의 본심과 달리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매개로 부당한 사회를 고발하는 어떤 고도의 암시의 장치로 추측할 수 있다.

둘째는 근면한 사생활이다.
  시공간과 지역적 관습을 넘어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바닥에 떨어진 재료와 광택이 나는 빵 반죽 그릇과 테이블을 관찰하면 하루에 생산해 내는 작업 분량이 적지 않았음을 예측할 수 있다. 더구나 흰 가운 아래 받쳐입은 외출복 같은 검은 양복과 깨끗이 닦여진 반짝이는 구두는 현실과 동떨어진 우스꽝스러운 조합이다. 그러나 외출복일망정 그의 평상시 단정한 용모와 성품을 덤으로 잘 보여주는 데 한 몫을 기여하고 있다. 만일 그의 표정에서 화난 듯한 선입견 혹은 설정에서 살짝 비켜서서 재차 살핀다면 자기 일에 충직한 전문가의 진솔한 모습이며, 거기에는 비굴함이나 간사를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직분에 감사하는 경건한 영혼의 표출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셋째로 직업의 긍지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빵을 주식으로 하지 않으면서 독일의 제빵사라는 직업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마는 제빵사는 풍채에 비해서 작업대 위의 트레이에 올려놓은 부풀기 전의 제품은 작고 왜소하다. 그 덩치로 한 일이라고는 어쩌면 쟁기로 호미질하려는 것이나 어린아이의 소꿉놀이 같다. 물론, 작은 사람이 작은 일을 하고 큰 사람이라고 반드시 큰 제품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유치하여 귀엽기까지 하다. 떡 장수가 떡하나 더 먹는 이치로 그는 제빵사라는 직업 때문에 일터를 오가며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는지 몰라도 부풀어 오른 몸의 비만도가 상당하다. 또한, 흑백사진 특유의 분명한 대비가 더 큰 중량감으로 다가오며 표정과 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진지하다. 작은 빵을 소꿉놀이만큼 쌓아 놓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당연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자기 직업의 긍지를 나타내며 반대급부의 빈약을 만회하려 하고 있다.

결론
  작가 아우구스트 잔더는 제빵사를 포함한 자신의 대서사시와 같은 초상의 작품집을 토대로 사회의 전반을 비추며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하여 비판적 시각에 날을 세운 참여작가다. 기록은 기억에 우선하며 그중에서도 사진은 소리나 글보다 훨씬 많은 정직한 정보를 압축하고 있다는 증거를 그가 보여 주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종국에는 오직 진실만이 남고 진실만이 가장 높은 소리로 외친다.

참고문헌
두산백과, August Sander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7280&cid=40942&categoryId=33457
(2016. 10. 4 확인)

[네이버 지식백과] 푼크툼 [punctum]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19383&cid=43667&categoryId=43667
(2016. 10. 4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