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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수 필

흑백사진(운동회)

by 山海鏡 2008. 8. 5.

학교 체육선생님이 하얀 유니폼에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다니기 시작하면

선생님의 흰옷과 운동장에 시원하게 그어진 횟가루 선들 때문에 하늘은 더욱 눈부시고 푸른것 같았다.

국민학교 운동장은 조회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방 미루나무 위에다 만국기를 늘여 묶어 부채살 같이 하늘을 덮었고,

조회대 쪽에도 운동장 주변에도 이마를 잇대어 하얀 천막들이 쳐지면 운동장 앞쪽은 약간 높은 책상과 의자를 창고에서 내다 놓고,

다른 쪽에서는 안에다 멍석을 깔고 밖에 솥을 내다 걸어 운동회 준비를 하였다.

 

가을에 들면서 운동장 여기 저기서 학년 마다 따로 황토색 먼지가 복닥하게 일도록 연습을 해왔는데

맨손 체조와 율동과 다양한 마스게임은 고학년의 몫이고 공굴리기와 엄마와 같이 뛰기는 저학년의 몫이다.

오늘까지 마지막 예행연습을 마칠때 쯤이면 우리나 선생님의 얼굴은 구리빛이 되었고 목에도 쇳소리가 났었다.

 

여러번 거듭되는 곤봉 체조는 힘도 들었고 틀리지 않고 한 번에 해내면 기쁨도 무지 컸지만 나 혼자 잘한다고 끝나는게 아니었다.

선생님의 호각과 음악에 맞춰서 한사람도 틀리지 않고 끝나야 오늘은 그만 한다고 약속을 하곤 했었다.

 

멀리 떨어진 시골 엄마들의 운동회 날은 바쁘다.

삶아둔 고구마와 밤과 계란을 내어오고, 볶은 깨와 나물, 단무지를 넣어서 김밥 도시락을 준비하고, 이것 저것 장에 내어서 모아둔 몇 푼의 지폐도

치마의 속주머니에 말아 넣고.

아침일찍 머리감고 동백기름으로 곱게 빗고, 동동 구리무와 분을 바르고 입술에는 빨강 빼니를 하고 하얀 고무신을 신으면 몸단장은 끝났지만

목덜미와 팔은 까만색이니 뽀얗게 주리잡은 빨래같기도 했다.

알록달록 나들이 양산에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신이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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