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여섯살 무렵.
안방 벽에는 꽃이나 과일 또는 닭을 예쁘게 수놓고 풀먹여 다듬질한 하얀 무명 횟대보가 한쪽 벽을 불룩하게 채우고있었는데,
아이들과 숨바꼭질 할 때나 그냥 심심할 때 그 안에서 숨거나 혼자 가만히 놀아서 포근한 그 속을 너무나 잘 안다.
아버지의 외출복과 어머니와 할머니의 옷가지 몇 개가 긴 대나무에 걸려 있어서 살금살금 지나 다닐때 걸대가 벽에 부딪치며 떨그렁 거렸었다.
이렇게 덮개는 먼지가 쌓이는 것을 막을 수도 있지만 헤어진 옷이나 부끄러운 살림살이를 가리기에 좋았고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파리였던 것 같다.
천정마다 한지를 한 뼘이나 아니면 좀 더 크게 잘라서 댓군데 펄럭거리며 붙여 놓았는데 그들에게 내어줘 베푼 것이니 파리방석이라고나 할까?
이놈들은 평소 하는 짓과 달리 쉬는 곳은 꼭 새벽(횟가루칠) 해 놓은 천정이나 걸어둔 흰색 옷깃에 일을 보니 가끔 큰일에 나가려고 입은 한복 동정에 까만 점은 양반 체면을 완전히 구겨놓았었고, 비오고 한가한 날 집에서 낮잠이라도 한 숨 붙이려 하면 잡놈들이 서로 붙어 먹으려 이리저리 날며 신경을 건드리니 자다말고 벌떡 일어나 파리채로 응징을 했는데, 머리와 얼굴. 날개와 손발바닥을 틈나는 대로 손질하고 온갖 청승을 다 떠는 짓을 보고 있노라면 그놈의 파리똥도 지겹지만 정말 얄밉기까지 하였다.
코딱지 만한 방에 몇 안되는 옷가지를 넣기위해 장롱을 따로 둘 필요가 딱히 없었고 대신 조그만 고릿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속에는 할머니의 한번도 입어보시지 않은 하얀 명주 적삼과 비단 치마와 속꼿 한 벌이 접힌지 오래된채 곱게 자리잡고 있었고,
아버지의 전역때 입고나온 깔깔한 갈색 군복 한 벌과 은가루가 손에 묻을것만 같은 몇 마리의 좀들이 그 속에 함께 숨겨져있었으며.
제사때 쓰는 향 한 토막과 또, 한지와 무명실 한 타레와 지퍼달린 낡은 치부책과 그 속에 빛이 바랜 아버지의 사진 몇 장이 있었던것 같았다.
큰방, 상방, 정지 한 칸에 기역자 방향으로 정지와 터진 외양간이 있었는데.
작은 마당이 딸린 이 좁은 오두막의 鄭자 期자 成자 할머니는 큰방 시렁위에 높이 올려진 가문의 내력같은 까만 보물상자의 주인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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