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 해 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 그야말로 머릿털 나고 첫 사건을 위하여,
꿈 반 기억 반의 희미한 추억속 뉴런의 밑바닥을 지금 나는 어릴 때 젖먹던 힘까지 들여가며 살펴 보려 한다.
아마 첫 돌쯤 지나고 둥글게 생긴 나무상 다리를 잡아 당기고 걸음을 막 떼기 시작 할 무렵이거나 아니면 약간 더 지나서일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는 대자리를 방바닥에 깔고 살았고 방은 언제나 조금 매끈거렸는데 밥상이든 사발이든 물건들은 자리위를 조르르 미끌어 졌고, 구슬도 이리저리 결을 따라 굴러갔었다.
약간은 차갑고 탄력이 있는 납작하게 쪼갠 댓살의 격자 사이로 폴싹폴싹 맨 봉당에서 일어나는 먼지도 보며 자랐다.
"얼라(새끼) 하나 키우려면 똥가루가 서말"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자식의 변을 기저귀에다 거의 받아 내긴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뒷 처리를 잘 한다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여간 성가시고 힘든일이 아니기 때문일것이다.
내가 방에서 내가 큰일을 치르면 처마 밑에 놀던 내 키보다 훨씬 큰 누렁이가 방으로 불려 들어오곤 했었는데,
때마다 처리를 완벽하게 해 내는 기저귀 형편도 넉넉지 않았고 조금만 다른데 신경을 쓰게되면 뻗치는 오줌이 대자리 밑으로 흘러 들기 일쑤였었다.
방문을 열고 "워리! 오요요 ~"
"워리"는 누렁이의 집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오요요"는 이리 들어와서 폐기물을 잘 처리를 해 달라는 요청 싸인이였다.
쉽게 말하면 똥개를 방으로 불러들여서 뒷처리를 시켰었다.
언제가 좋으냐면 푸른똥 설사나 음식을 엎질렀을 때, 오줌을 방바닥에 쌌을 때의 신속한 처리에는 정말 왔다(what a ...)였었다.
설사 기저귀를 빨 때도 힘들이지 않을거고 알 엉덩이까지 덤으로 써비스를 받았으니
워리의 상냥하고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 정신은 요즘 기업들도 꼭 배워야 할 수준 높은 덕목일것 같다.
대자리에서 자고나면 등짝이고 얼굴이고 살이 닿았던 부분마다 멋진 채크무늬가 생겼는데 대자리의 음각문양은 숨기지 못할 깡촌의 빈티 그 자체였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무척 환경친화적으로 자라왔었다.
얼마나 세월이 더 지났을까
어머니는 배가 불러오고 할머니는 늘 나에게 동생에 대하여 묻곤 하였는데 그때 나는 생각이 나는대로 말했었다.
"엄마 뱃속에 모가 들었노?" 할머니는 다른 할매들 앞에서 자랑삼아 물어보았다. 나는 그 때마다
"무서븐 가시나가 있어요!" 하며 몸써리를 쳐 보였다.
내가 어떻게 여동생이 있는것을 알았는지 몸써리 까지 치며 무서운 가시나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있게 말한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다.
여동생은 무섭지도 눈이 빨갛지도 않은 순댕이 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후 어머니는 거짓말 같이 여동생 순이를 낳았고,
나는 전부터 알고 있었던것 같은 동생에게 젖을 물려주고 동시에 안방에서도 추방되었고,
상방(건넌방)에 할머니와의 동거가 이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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