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뒤엉키는 무거운 걸음이지만 어머니는 머리에다 조그만 나무 동치를 받쳐 이고 허리에는 나물보자기 하나를 불룩하게 차고 골목을 들어서는데, 그날은 이웃에 품앗이 모내기를 나가셨던 날이다.
어머니께서 해가 빠져 어둑어둑할 무렵이 다 돼서야 들어오셨는데 다른 날 보다 많이 늦으셨다.
대개 모내기는 하루에 마쳐야 하기 때문에 논마지기 깨나 부친다는 집에서는 품 꾼을 넉넉히 사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쩌다 보면 해는 넘어가는데도 논빼미 한 두개 남을 때가 있는데 더 할 힘도 없고 집에 챙겨야 할 식구도 있으면 여기서 그만 끝내고도 싶어진다.
그러나 얼마 꺼리도 되지 않는 놈을 남겨놓고 삐쭉 논둑으로 나온다는 것은 서로 보기에도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 좀 힘이 들더라도 써레질 마친 빈 논바닥으로 멈칫거리며 어설프게 찬물에 발을 들여 놓으며 뻣뻣한 허리를 다시 수그리고 못단을 잡게 된다.
대부분 해마다 겪어온 품앗이라 누구네 하면 몇 마지기에 하루 품 꾼은 몇 명이라고 대중 잡을 수 있었다.
들보다 산이 많고 넓은 논보다 뙈기 논이 많기도 하여, 오죽하면 모내기 다했다고 삿갓을 쓰려는데 삿갓 밑에 하나 더 있더라는 말도 있을까.
어머니께서 남은 모를 마져 심고 오시느라 늦었던 것인지, 일찍 끝나긴 했지만 심고 남은 모종이 좋아 보여 큰골 우리 논에다 몇 모찜 옮겨 놓으시고 오셨던 건지, 아니면 조금 일찍 끝나서 논둑이나 산자락에서 나물도 뜯고 땔나무도 조금 주워서 오셨던 것일까?
머리에 이고 오셨던 나무둥치를 내려놓으니 똬리로 받쳤던 수건이 떨어졌지만 허리에 찼던 나물 보자기를 소쿠리에 풀어놓으시고 부엌으로 들어가셔서 벌꺽벌꺽 냉수 한 바가지를 들이켜셨다.
오늘은 논뙈기가 많아서 늦으셨다며 소쿠리 속에 나물을 몇 웅큼을 골라서 씻어서 찌고 저녁을 지으셨다.
뜯어온 나물을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비집 같이 붙어 있는 논빼미에 모를 다 심고 다른 논으로 이동하면서 논둑이나 산기슭에 돋아난 찬거리를 놓치지 않고 한옹큼씩 뜯어 모아 앞자락에 넣으셨고 오시는 길에서도 조금 뜯었던 모양이다.
들에서 집으로 들어올 때는 머리 위에나 손에는 나물이나 작은 나뭇가지 하나라도 꼭 들고 오시던 그 모습은 보금자리와 새끼가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 였을것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하며 살아오셨을지도 모르지만, 물질이 풍요로운 지금서야 강아지도 먹지않는 험한 음식을 드시고 미련하게 힘든 농사일 집안일 겨울 땔나무까지 해 오시느라 허리가 절단나셨다.
오늘도 유모차를 밀고 다니시며 호박이며 상치를 시장으로 내어가시니 어머니의 허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어떤 보석보다 값진 진신사리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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