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9년 1월 31일 10:30 ~ 16:30분경
참 석 자 : 제일형, 판호님 부부, 소대장님, 금덩이님, 나와 유란 총 7명
산행코스: 군부대 훈련장 옆-> 국망봉 -> 저수지 -> 복귀
차량제공 및 운전: 소대장님
아침 8시에 제일형 아파트 앞에서 대원들이 모여서 소대장님의 애마에 일곱 명이 타고 포천으로 향했다.
2시간 남짓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현지에 도착하니 산에는 별로 눈이 없고 나무들만 앙상하게 보여서 눈꽃산행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단 지난번 행로를 따라서 산행하기로 하였는데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들 오늘이 힘이 더 든다고 했다.
대략 해발 200 여 미터 부근에서 1100 미터를 정상까지 내리막 없이 치고 올라가므로 약 900미터의 표고차가 힘들게 하였고
지난 번 산행 때는 눈이 있어서 보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오늘은 흙먼지와 낙엽을 밟는 길이라 더욱 지루하고 팍팍하였던 것 같았다.
소대장님이 군복무를 여기서 보냈기 때문에 훈련장을 빤히 내려다 보면서 산을 오르는 내내 그 당시 추억을 이야기 하였고
우리는 잠시 동안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의 발걸음을 쫓아 과거로 걸어 들어갔다.
중간에 널찍한 헬기장에서 점심 식사를 맛나게 하고 있는데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 지나 가길레 여러 사람이 다정하게 인사를 건냈지만 묵묵부답이다.
적어도 목례라도 하면 어디가 탈나는가? 괜히했다 싶어졌다.
판호님이 중국 딸네 집에서 두 시간만 가면 태산에 간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 해 사위 초청으로 중국에 갔다가 청도의 노산을 다녀왔다고 했는데 태산에도 가보고 싶은 모양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 만 높다 하더라 하는 시조가 입에서 읇조려 진다.
산이 높기도 하거니와 산세가 중후하고 기상이 높아 태산이 명산으로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는데
우리도 나중에 여건과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산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오르다 보니 오른쪽으로 개이빨산이라는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연이어 보이고 왼쪽으로 국망봉 정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태산이 높다하되 이렇게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모든 일들이 언젠가는 정상에 서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눈 또한 높은 곳은 1 미터 이상 쌓여있고 해가 든 방향은 녹아서 없어졌다.
서해안에서 발생한 수증기가 눈으로 변해서 계절풍을 타고 영서 산간에 모두 퍼붓고 강릉쪽 영동지방은 가물어지는 팬 현상이 있었다.
나는 눈이 좀 멀리까지 날아가서 대한민국을 골고루 뿌려 겨울 가뭄이 해갈 되었슴 하고 바라며, 이번 눈은 조루증에 걸렸나...? 하고 빈정거렸다.
지난번 만큼은 아니지만 정상 부근에는 아직 눈이 많이 있어서 내리막은 모두 아이젠을 착용하였는데 산딸기님과 유란이는 엉덩이로 눈썰매를 타면서 내려가고
여러번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연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판호님이 먼저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둘러본 경치도 좋지만. 오늘따라 아무도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아서 눈으로 찍어가자고 했다.
사방에 내려다 보이는 포천의 들판은 넓고 탁 트여 한 눈에 들어오고 저 만큼 북쪽으로 백운산이 흰눈을 머리에 이고 있었고 정상 표지석에는 이항복의 시조가 적혀 있었다.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 삼아 뛰워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이 항 복
멀리 유배를 떠나는 길에 나라를 걱정하는 신하의 마음이 아닐까...
내려가는 길
전번에 유란이가 눈 오는날 여기를 다녀와서 며칠을 내게 자랑하던 그 코스였는데 오늘도 보니 이미 유란이는 스틱은 접어서 넣고 밧줄을 잡고 신이나 있었다.
발로는 눈을 미끄럼 타면서 로프를 손으로 잡고 쭈~욱 미끌어지면 내려가는 것은 눈깜짝 할 사이에 하산이 끝날 것만 같았다.
아쉽게도 절반 정도 내려와서 눈이 녹아서 없어지고 바위와 낙엽을 밟으며 얼음에 미끌어 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살금살금 걸어 내려왔다
출정을 하시는 날 인사도 못드렸는데~
지금쯤 연대장님은 하산하는 우리와 반대로 히말라야 해발 7000 여 미터에 있는 베이스 켐프를 향하여 인생여정에서 한국 최고령 히말라야 7000 미터 도전의 비장한 각오로 한 걸음씩 내딛고 계실거라 생각하니 마음의 압박감이 느껴온다. 처음 해외원정 등반을 하실 때 만큼 사전준비를 충분히 못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더욱 마음이 무겁지만 부디 안전한 산행을 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기원하는 바램이다.
산행을 마치고 현장에서 조금 지체를 하게되면 교통이 막히게 되므로 뒷풀이는 분당가서 하자고 유란이가 제안하여 일행은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차에 싣고 곧 바로 돌아오는길 분당에서 바우형님 가게 뒤 감자탕집으로 가기로 하였으므로 바우형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지금 모임에 나가시는 중이란다.
같이 뒷풀이를 하면 좋겠지만 형님도 대간하신다고 다른 모임을 모조리 펑크를 내셨으니 번개산행하는 이런 날은 중요한 모임에는 참석을 해 주어야 하는 것 같았다.
뼈다구탕 대짜 두 개 보다 한 그릇씩 따로 시키는게 공평하고 났다고 말하며 산딸기님이 팍팍 잘 끓여달라는 주문을 하였고 금덩이님은 매운고추도 특별히 주문을 했다.
금덩이님이 미국 갔을때 공항 로비 유리상자에 전시된 크다란 순금덩어리를 보고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언젠가는 자신이 저 금덩이의 주인이 되겠다고 닉을 금덩이라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은것 같은데. 오늘도 뚝배기 속에서 기름기를 일일이 건져서 뼈다귀통에 버리고 있었지만 내과의사 본인의 진료과목이 아니라서 정작 담배는 하는건지 모르겠다며 모두들 웃었다.
마지막으로 제일형님 집으로 갔다.
발에서 냄새는 나지만 형수는 반갑게 맞이하였고 감이랑 배와 사과를 내어와서 후식을 멋지게 장식하였다.
옻나무 근방에만 가도 옻이 오른다며 베란다에 공수해 놓은 박대장님의 옻나무를 어제 밤에 유란이더러 가져가라고 했대나 뭐래나...
형수는 옻이라는 말만해도 오른다고 했고 바우형님도 옻 부근에만 가도 못산다고 했었지만 용감한 유란이와 산딸기님은 옻을 맨손으로 만지고 있고 판호님도 코에다 대면서 옻이 옮는지 어쩐지 궁금해 하였다.
그러고 보면 박대장님은 참 바쁘다 소백산 자락으로 이사간지 두 해 째던가? 우리 대원들에게 매주를 구해주랴 또 옻 나무 베러 다니랴 할일도 많다.
며칠 전 눈 오는 날 비료포대로 미끄럼 타다가 목을 삐었다는데 시골에 살면서 동심으로 돌아간건 아닌지 부럽기도 하고 이것저것 늘 챙겨줘서 고맙기도 한데 하루 속히 돌아간 목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완쾌되기를 기원해 본다.
차량 지원에다 운전까지 하면서 회비는 조금받는 소대장님! 올 해도 돈 많이 벌어서 늘 많이 쏘시고 적게 받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함께하신 모든 산우님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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