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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수 필

칼라사진(엄마놀이)

by 山海鏡 2009. 2. 28.

인류의 문명이나 문화가 후대까지 전해지는 과정에 대하여 많은 이론이 있겠으나, 우리는 무엇을 보고 배운다는 것과 부모를 닮은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보거나 배우지 않은 달걀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쪼아서 스스로 나오는 것과 걷는 연습도 없이 낳은지 몇 분 후에 바로 뛰어다니는 새끼염소를 보면 정말 경이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암탉이 병아리들을 날개 안으로 불러 모으고 보호하는 모습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몸에 어떤 청사진 같은 본능이 기록되어 있을 것만 같다.

 

 

아침에 마포 걸레를 들고 로비로 나갔는데 한나가 눈썹이 볼그레 상기되어 내게 뭐라고 하였지만 입 안에서 맴도는 너무 작은 목소리라

"무슨 일이 있었어?" 하고 재차 묻자

"톰이 없어졌어요." 하며 울먹거렸다.

얼마 전 사무실에서 기르게 된 생후 몇 개월 안 된 강아지가 없어져서 아침에 출근해서 지금까지 이방 저방을 다니며 책상 아래 구석구석에다 연신 톰! 톰! 톰! 하고 불러대고 있었다.

 

순간 아찔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햄스터 한 마리가 죽어서 비 오는 날 저네들 어미라도 죽은 모양으로 울면서 아파트 화단에다 장사지내던 것이 떠올랐는데, 그동안 매일 같이 용변 기저귀를 갈아주고 강아지 집도 예쁜 것으로 두 번씩이나 바꾸어 주면서 닦고 먹이고 정성을 쏟았었다. 그래서 한나만 보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둘이 어지간히 정이 들었던 모양인데, 앞으로 닥쳐올 기막힐 사태를 생각하니 나도 다급해져서 잠시 손을 놓고 강아지가 있을 만 한 데를 같이 찾아다녔지만 분명히 없어진게 확실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딱한 처지를 위로하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한나를 달랬다.

그래도 새침한 얼굴을 하고 또 이리저리 쳐다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아 다시 물어보았다.

"목줄의 이름표에 전화번호는 붙여놓았지?"

"톰이 떼어버렸어요..."라고 말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사람들이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서 강아지 짓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지하 스튜디오에서 김 실장이 강아지 등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계단을 올라오며 아무개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왔다고 했다.

한나는 벌써 톰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거기로 달려가서

"톰! 톰! 톰!" 여러 번 불러대며 반가움에 어찌할 줄 몰랐고,

톰은 폴짝폴짝 뛰며 꼬리를 흔들어대며 둘이서 얼싸안고 벌이는 감동의 상봉은 참으로 눈물겹기까지 보였다.

금세 한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누가 보건말건 강아지와 입을 맞추며 야단법석이 벌어졌다.

 

잠시 그러는 것 같더니 금세 톰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매매...이놈의 시키... 매매..."

신문지를 말아서 바닥에 땅땅 치면서 호통을 치고 있었는데 가만히 내다보니

톰은 "낑낑..."하면서

꼬리를 다리 안으로 넣고 머리는 수그리고 한나의 눈치를 살피며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걸레를 밀고 나가면 자기와 놀자는 것인 줄 알고 걸레를 물고 내달리고 자기 용변 기저귀를 물고 뛰어 다니는데.

톰이 하는 짓을 보면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을 구분을 못 하는 아직 어린 애기이고 천태만상이다.

그래서 사람이나 개나 처음 가르칠 때 제대로 가르쳐야 한하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철없는 강아지를 잃어버려 울다가 찾고나서 기뻐하는 모습은 여자의 본성인 모성애가 아닐까? 

아무대나 오줌싸면 혼내고 교육을 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앞으로 몇 년 후면 한나도 시집가서 엄마가 되어 저렇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치겠지 하는 생각에 내심 웃음이 터져나왔다.

바로 엄마 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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