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할 때,
교문에 나와 계시던 학생과장님의 두발 검열에 적발되어 나와 몇 놈이 귓불을 잡은 손에 이끌려 이발기로 보기 좋게 머리 가운데다 고속도로를 내게 되었는데, 그날 수업시간 중에 선생님께서 "저기 대가리 밀린 놈! 나와서 이것 한 번 풀어봐~" 하셨다.
질문을 할 때는 보통 "오늘 며칠이냐?" 하던지 번쩍이는 손목시계를 자랑스럽게 슬쩍 들여다보며 날짜에 맞추어 출석부에서 이름을 찾아 불렀지만, 그날따라 우스꽝스런 표적이 되었으니 왜 이렇게 머리는 빨리 자라나는지 조금은 원망스러웠고 여학생들 앞을 지나치며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릴 때는 집의 마당 한쪽에서 보자기 두르고 아버지의 콧바람을 맞아가며 머리를 깎았고, 여동생은 어머니께서 잘라 주셨는데 며칠 동안 단발머리 밑으로 가위자국이 남아있어서 어머니는 이것을 가리켜 사방사업이라 말씀하곤 하셨다. 학년이 올라가며 건 멋이 들고부터 나는 마을 이발관을 다녔는데 이발을 하고 막 돌아서도 약간 가무스름하게 자란듯한 모양새가 좋아서 이발기에 밑에 덮개를 끼워서 해 달라 주문했다.
푼돈이 생기면 만화책이나 빌려 보고 빵집을 들락거리며 한 달 생활비를 탕진한 시골 유학생들은 정말 돈이 없어서 몇 날 며칠을 버티며 개개는 놈도 간혹 있었지만, 나는 이런 망신을 견딜 수 없어서 하교 때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어머니는 항아리 속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꺼내 주시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니, 온 돈 주고 반 머리 하지 말고 제대로 깎고 오거래이~"
텃밭에서 배추나 오이 같은 채소를 장에 내다 팔아 푼푼이 모은 것과 어판장에서 뱃사람들에게 받은 생선 비린내 나는 지폐는 정말 고래심줄 같이 늘 여물게 쓰였지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의 멋 내는 꼴에는 어지간히 못 마땅하게 여기셨기에 이미 다 알고 계시지만 아껴쓰라는 빈말이었다.
내가 다니던 이발소는
페인트로 그려진 나무 간판이 하나 붙어 있었고, 안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행인들이 앞을 지나다니며 안을 힐끔 들여다볼 수 있는 미닫이 유리 창이 여럿 달린 건물이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이발사는 없고 가장자리가 벗겨진 흐릿한 거울과 묵직한 의자 몇 개와 연탄 불구멍이 활짝 열린 채 난로 위에서 물이 끓어 김을 뿜고 있었는데, 주인은 필시 옆집에서 손님 오는 것도 모르고 술독에 빠져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의사나 약사같이 흰 가운을 입고 있지만, 코가 언제나 빨간 김씨는 알콜중독 증세가 조금 있는 우리이발관의 주인이다.
대목 때가 되면 일당 이발사 몇을 더 채용하여 분주 한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 마을 사람들과 초등 중,고등 학생들의 머리를 깎아서 먹고 사는 조용한 이발소다.
원래 피부가 하얀데다 밖에 나가지 않았으니 조금 더 허약해 보였고 만일 정장차림으로 예식장 같은 데서 그를 처음 보았다면 말쑥하고 퀭한 눈 때문에 어쩌면 철학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 또는 돈 좀 있어보이는 백수 같은 고상한 풍모를 지녔다.
장의사나 다름없이 달리 영업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밤낮없이 자라주는 머리카락 덕분에 그가 좋아하는 막걸리에 약간의 게으름이 직업병 같이 늘어만 갔다.
어떤 날은 숙취로 깨었는지 새집 머리를 하고 나와서 "좀 쉬려고 하는데 니가 와서 짜증이다."라는 표정으로 구시렁거리며 이발기로 밀어 재꼈는데,
"으~ 으~"
어금니를 문 사이로 신음소리 비슷한 것이 새어 나왔다.
이발기에 머리카락이 찝혀서 한 번 밀어올리는데 10여 개 정도는 족히 뽑히는 것만 같았고 눈물이 찔끔 났지만, 주인은 "머스마가 참을성도 없어~ 머리카락 몇 개 뽑힌다고 소리를 내냐?" 하면서 핀잔주기가 일쑤였기에 많이 참았는데 그날은 좀 심했던 것 같았다.
그도 밀어올리는 이발기 아래로 머리가죽이 따라올라 오는 것을 느끼고는 약간씩 떨리는 손으로 조임 나사를 풀어내며 "마이아파? " 하고 웃어 보였다.
어른들은 가위로 자르고 포마드를 발라 드라이로 넘기는 멋진 실력도 있거니와 정성스럽게 만져 주었기 때문에 중요한 행사 때나 장가드는 신랑들은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왔지만, 우리같이 돈 안 되는 학생들은 바쁘게 이발기로 머리를 깎고 나면 몇 개의 머리카락이 그냥 있곤 했었는데,
그는 가끔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우리 쪽을 바라보며 "수십 만봉 머리카락 중에 한두 개 남았다고 그렇게 야단이니," 하고 푸념 하면서 앉아있는 우리의 표정을 슬쩍 훓어봤다.
추운 겨울 어르신들 면도할 때 거품 솔을 연통에다 문질러서 따스하게 데워주고, 비듬이 있는 것 같으면 손가락에 힘을 주어 팍팍 한 번 더 문질러 감겨주었던 그의 마음씨가 참 좋았다.
몇 해 전 보훈병원에 갔었는데 참전용사는 이발료가 무료였다. 아직도 타일로 된 물두멍에서 조리로 물을 퍼서 도자기 세면대에서 정성스럽게 머리를 감겨주었고, 손님의 턱에다 비누거품을 바른다음 이발사는 벽에 매달아 놓은 가죽 혁대에다 앞뒤로 번갈아가며 능숙한 폼으로 면도날을 세웠다.
젖혀진 의자에 누워 턱에 비누거품 칠한 채 면도를 기다리며 흐뭇해하시는 장인어른의 눈 속에는 잃어버린 추억의 시간이 바로 앞에서 흐르고 있는 듯 행복해 보였다.
지금 누가 나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거나, 마주앉아 내 손톱을 다듬으며 나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면 얼마나 친근한 마음이 들겠는가?
어린시절 내 모든 필요를 채워주고 보듬고 길러주고 기다려 주신 어머니와 결혼 하면서 바톤을 넘겨받아 지금까지 함께 지내온 아내와 그리고 좁은 집에서 살을 부대끼며 나누는 가족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주고받는 일상들이 모두 감사한 일들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코가 빨간 김씨가 미닫이문을 들어서며 "아무도 없네~ "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하면서 졸리듯 나무의자 위에 쓰러졌다.
이발사 김씨가 오늘은 술이 좀 과해서 나는 지금 이발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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