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누가 담배를 피우면 구수한 그 냄새가 좋아서 나도 모르게 윗주머니로 손이 가고, 옆에 누가 있으면 한 대 권하기도 했으니 어찌 되었건 담배인심 만큼은 무공해였었다.
그러나 전에 하루 두세 갑씩 피워오던 그 사랑스런 담배와 이별을 한 후로 이제는 누가 옆에서 담배를 피워대면 그 냄새도 싫어졌거니와 청정한 공기를 오염시키는 파렴치범으로 치부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내 신변도 퍽 많이 바뀐 것 같다.
담배가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好時節도 가고 이제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지만, 오히려 여자들은 담배를 피우면 턱에 수염이라도 나는 건지 음식점이나 노인들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뿜어대니 우리의 미풍양속이 굴뚝 공해로 치명상을 입는 중이다.
김홍도의 풍속 사진첩
우리가
어릴 때는 남자들은 담배를 피워야 나름대로 그들 축에 끼워주고 대접을 받았기에 대부분 군대 가기 전에 이미 골초가 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담배에 얽힌 이야기도 참 많이 있다.
한 번은 고등학교 남자 화장실에서 어떤 놈이 담배를 피우다가 선생님에게 걸렸는데
"너 담배 피웠지?" 하고 물으니 숨을 들이 쉬면서 태연하게
"안피웠습니다!" 하고 대답했는데 하는 짓이 수상하여
"피운 것 같은데?" 하고 또 물어보았더니 또 숨을 안으로 들이 마시면서
"안피웠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이놈이 하는 꼴을 재미어서 장난삼아 천천히
"안피웠어?" 되물어 보았더니 더 이상 숨을 참을 수 없을 만큼 들이 마셔서 이제 코로 연기가 솔솔 나오게 되니까
"후유~피웠습니다~~"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도박도 그렇고 내기도 그렇듯 잃거나 지고 나면 속이 쓰리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구석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도시나 촌이나 그놈의 노름은 패가망신의 첩경인데도 누구나 공돈이 생기면 주머니가 근질거려서 못사는 모양인지 오래전. 시골에서 농한기가 되고 이런저런 일로 목돈이 들어오면 여름날 구더기 들썩거리듯 여기저기 화투판이 벌어졌는데, 벼를 추곡수매 했다든지 담뱃굴에서 말린 잎담배를 전매청에서 수매해가면 집집마다 알토란같은 뭉칫돈이 들어오고 꾼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여들어 긴긴 겨울밤을 화투판으로 새웠다.
아침이 되면 누구는 마누라 몰래 하룻밤에 논 몇 마지기를 날렸다는 소문이 돌았고 누구네 엄마는 새벽같이 소쿠리를 들고 화툿방을 찾아와서 밤새 딴 돈 내 놓으라고 악을 써대었다.
젊은이들은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을 발휘하여 친구네 집에서 담배내기 화투를 쳤는데, 종이에 석회를 넣어 만든 화투는 요즘 질 좋은 나일론 화투와 달리 제침을 실눈으로 죄다 보면 툭 부러져서 반 토막이 되기도 했고 이런 것도 없으면 짝이 안 맞아 그냥 넣고 쳤었다.
꾼이 될 놈들은 화투 섞는 소리부터 달랐는데 누구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패 돌리는 솜씨도 좋지만 툭툭 던지는 농에도 기름끼가 줄줄흘러 구경하는 여자들은 일어설 줄 몰랐다.
척척 멋지게 섞고 돌려가며 주거니 받거니 오랫동안 놀다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무릎이 아프지만 한쪽에서는 누에 같은 까치 담배가 수두룩이 쌓이고 어떤 놈은 쌈지를 털어 주인에게 새 담배를 사오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신선 노름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주인은 담배도 팔아가며 뜯어낸 고리로 밤참을 내어와 함께 나누었다.
그런데 화투는 안 치고 옆에서 손가락으로 훈수해 가며 제돈 한 푼 안 들이고 재미보고, 참 나오면 참 먹고 막걸리 사발이라도 돌리면 술상 머리에 들어 붙어 술안주를 축내는 개평꾼도 많았다.
막판에는 점수가 쉽게 오르는 돌이 짓고땡이나 섰다로 옮아가는데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만큼 판도 점점 커져만 갔고,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넘치고 방 안은 굴뚝인지 오소리를 잡는 건지 구분이 안 되었지만, 잃어버린 한 갑보다 남의 것 따서 먹는 한 개피가 더욱 맛이 있었기에 농한기의 겨울 밤은 그들만의 천국이 되어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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