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촌 분이 누나는 얼굴이 얽었다.
지금은 천연두가 자취를 감췄지만, 전에는 마마 돌림병으로 곰보가 된 사람들을 자주 만났는데 어른들은 얽은 사람은 성질머리가 있다 하기도 하고 우스갯소리로 콩 타작마당에 넘어졌다 하기도 하였다. 얼굴이 너무 심하게 패여 매주에 콩 빼먹은 것 같은 처녀총각은 달밤에 맞선을 보면 훤한 달빛에 속아서 표가 안 난다고도 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하나둘씩 저들의 엄마 손에 이끌려 어깻죽지에 피를 흘리며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물어보니 재넘어 누구네 집에 가서 우두를 맞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무서운 행사에 잡혀가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달아나며 버텨 보았지만, 결국 나와 아직 철모르는 동네 아이들 몇몇까지 모두 끌려가서 팔뚝에 따끔하게 우두를 접종하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우리 또래 이후로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얽은 사람은 하나도 못 본 것 같다.
상밤터를 오다가다 당숙네 큰집에 들르면 "원이 왔나?" 하시며 작은 체구의 큰엄마가 늘 다정스레 두 손을 잡아주며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주셨고, 그때마다 형과 동생들과 놀다 가라며 감이나 먹을 것을 내어 오셔서 잘 어울려 놀았었다. 열 몇 살이나 더 먹은 누나는 나를 쳐다보기나 했을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끔 마주치며 눈인사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누나가 시집을 가는 날!
집안일이라서 으레 내 일 같이 나서서 했기에 그날도 아버지와 엄마를 따라 당숙네로 일을 도와주러 가게 되었는데,
동네에서 어느 집 큰일이 있으면 막걸리 냄새와 소음으로 떠들썩하고 어른들은 마당에 쳐놓은 천막 속에 멍석이나 가마니를 깔고 국시와 술상을 받았고, 어른들 틈새로 아이들은 정지를 드나들며 저거 엄마한테서 잔치 국수 한 그릇씩 받아 비워내었다.
지금은 "신랑 부~ 출~ " 이것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큰집 마당 가운데 솔가지와 대나무를 꽂은 높은 초례상이 차려지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쪽에서는 돼지를 잡고 마당 한쪽에서는 시커먼 가마솥에다 국수를 삶으며 동네의 경사로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마당 한복판을 중심으로 하객들이 빼곡히 둘러서서 신랑의 용모와 수줍은 새각시 모습을 보려고 앞사람 어깨 사이로 목을 내밀고, 키 작은 사람은 앞줄에 앉거나 담이나 툇마루에 올라가기도 하고, 병풍을 붙잡고 밀치거나 당기며 야단법석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누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이쪽저쪽을 번갈아 보며 히쭉거리고 입담 좋은 어떤 사람이 한마디 툭 던지면 모두 까르르 웃어서 부엌에서 불을 지피던 아줌마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이쪽을 바라보며 웃었고, 밖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종종걸음으로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에 가려서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볼 수 없는 나와 아이들은 어른들 바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 겨우 얼굴에 연지곤지 찍은 누나를 보았다. 누나는 양쪽에 팔을 붙잡은 사람들에게 몸을 맡긴 체 긴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서 있고 족두리 장식과 구슬은 긴장한 누나의 이마 위에서 약간씩 떨렸고 그때마다 구슬은 햇빛에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초례상 위에는 기름기가 흐르는 수탉 한 마리가 새끼줄에 묶인 체 고개를 쳐들고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고 아래는 대야에 물이 담겨져 있었고, 싱글벙글 웃는 매형과 긴 소매로 얼굴을 가린 예쁜 누나는 마주 향하여 서 있었다.
사람들은 각시가 웃어서 첫 딸을 낳을 것인지 보다 곰보 분이 누나가 화장을 하면 얼마나 예쁜지가 더욱 궁금했을 것만 같았는데, 누나는 그저 이 난처한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라는 눈치였다.
행사의 마지막쯤 되었을 때,
각시와 신랑이 표주박에 술을 나누어 마셨고, 매번 각시는 양쪽에 선 여자들과 셋이서 두 번 절하는 반면 신랑은 한 번만 절하였다.
사모관대를 하고 웃음을 잘 참지 못하는 매형의 얼굴도 여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족두리에 색동저고리를 곱게 입은 누나도 여기저기서 터지는 요란스런 폭죽에다 팥과 쌀 세례를 부채로 막으면서 오색 테이프를 뒤집어쓰고 축하 행진을 하였고.
후에 나는 친구들과 색깔 고운 테이프는 돌돌 말아서 호주머니에 넣으며 누나의 혼수 중에 경대 하나를 받아 들고 가마 뒤를 따라 신랑집으로 나섰다.
얼굴은 곰보지만 그날따라 봄꽃같이 화사하게 예뻐 보이는 누나에게 마음속으로 "누부야 잘 살아라~ "했을 것만 같았다.
지금 분이 누나는 마음씨 좋은 매형과 일찍 사별하고 억척스럽게 많은 농사를 혼자 지으며 조카들을 잘 키워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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