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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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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수 필

線(선)

by 山海鏡 2010. 4. 28.

() / 황영원

 

막냇동생 명석이가 며칠 전에 늦둥이 딸을 낳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마지막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가는 길에 조산원에서 몸조리 하는 막내 내외와 조카를 보려고 잠시 들렀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영악하여 대부분 아이 하나를 낳고 둘째를 출산 전에 비싼 사교육비와 내 집 장만의 기회 등을 따지며 고민에 빠지는 것 같다. 집 칸이라도 먼저 마련하자고 맞벌이에 열중인 경우와 하나면 됐지 셋은 생각할 수도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되어버린 지금, 우리의 부모님 세대야말로 가난과 폐허에서 살림을 일으키며 대여섯 명씩을 길러냈으니, 과연 슬픔과 기쁨으로 빼곡한 장한 인생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조산원 출입구에 설치된 공기 샤워기로 한 사람씩 들어가 몸을 구석구석 털어내며 소독을 하고 들어서자 막내가 입이 귀에 걸려서 싱글벙글 웃으며 머쓱하게 나와 있었다. 아들 하나에 칠 년을 매달리다 마흔이 넘어서 얻은 딸은 얼마나 새롭고 사랑스러울까.

 

복도 오른편 바로 곁에 유리로 막힌 신생아실이 있었는데 그 안쪽에 투명한 플라스틱 바구니 속에는 선물가게에 진열된 상품같이 대여섯 명의 아기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흰 수건에 돌돌 싸인 까만 머리카락과 볼그레한 얼굴은 영화관 매표소나 페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나 감자튀김을 살 때 점원이 밑을 잡고 조심스레 넘겨주는 봉지 같기도 하고, 어쩌면 하늘 저 높은 곳에 계신 분께서 인생의 기쁨을 위하여 하나씩 내려준신 가장 귀한 선물 꾸러미 같아 보였다.

 

여러 명 모두 비슷비슷하여 그놈이 그놈 같아 보였지만, 막내가 다가서며 이 아이라고 손짓하자 어머니의 첫 마디가 눈은 명석이 닮았고, 어디는 누구를 닮았다고 했다.

꼬부라진 할미는 두 손으로 창 턱을 붙잡고 허리를 일으켜 세우며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며 연신 "흐이그~ 내 새끼!" 하시며 기쁨의 미소가 만면에 가득했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던 나는 그냥 할머니보고 손주를 찾도록 한 번 내버려 둘 걸 그랬나 싶었다.

 

우리는 아이를 보면서 인물평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저만큼 복도 끝에서 산모가 이쪽으로 오는 것도 몰랐다. 몸은 아직 힘들지만 환한 얼굴은 걱정근심이 물러간 표정이다. 제수씨는 원래 건강한 편이라서 식성도 좋고 그날따라 얼굴과 볼이 볼그레하게 상기 되어 있었다.

"아기의 볼이 통통하고 예쁜 것은 제 어미를 꼭 빼닮았구먼. 엄마는 참...", 하면서 속으로 말했다.

 

나는 사돈 내외와 잘 아는 처지라 두 선을 동시에 보는 겹눈이라도 생긴 것일까.

먼저 다녀간 막내의 장모는 외손녀를 보고 제에미를 닮았다 했다는데 이것은 서로 자기가 익히 아는 선에다 나중 것을 슬쩍 얹어 보는 것이다.

할미가 제 핏줄을 금세 알아보는 것도 아이의 얼굴에 또 자신의 얼굴이 포개져 있기 때문일 게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런 선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어떤 고귀한 선이 숨어 있고 또, 배우나 마나 한 고약한 선도 함께 물려받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선을 부각하느냐는 자유지만 그런 만큼 선택에 대한 책임도 마땅히 따른다.

나는 나를 잘 모르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분명히 내 고유한 어떤 선의 특징을 잘 찾아낸다.

 

그래서 갈고리같이 못난 선보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곡선을 얼굴에 띄워 올릴 일이고, 거칠고 가식적인 생각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생각으로 선한 미소를 만면에 가득 채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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