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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문 학/수 필

손/ 황영원

by 山海鏡 2014. 10. 29.

()

황영원

 

  골목 앞 비둘기는 내가 지나가도 옆으로 슬금슬금 피하기만 한다. 봄에 떠났다가 추워지는 늦가을부터 건물 옥상에서 털 고르기와 해바라기를 하며 가끔 돌아서서 배설물을 아래로 깔긴다. 결국, 앞집 잔반통에 대고 턴 음식 찌꺼기가 우리 안마당에 떨어지는 격이다.

 

  또 저들끼리 과자 부스러기를 내던지며 오종종 달음질치는데 입에 문 것조차 뺏고 빼앗기는데 무엇을 먹을 때는 손이 없어 그런지 더욱 난폭하고 치열해 보인다. 만일 저들도 날개 아래 손이 한 쌍 있었다면 박쥐 아닌 평화의 천사를 닮게 될까? 손은 주인을 닮는다. 펴라면 펴고 움키라면 움키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수는 있는 걸까?

 

  아내가 손가락만 한 햇고구마를 삶아왔다. 진보라 색 껍질에다 속살은 향긋한 호박색이다. 이렇게 풋풋한 것은 껍질째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 그러나 다 자라지 못한 어린 것을 먹는다는 게 식물에나 농부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작은 것조차 나눌 때 기쁨이 있다.

 

  지금 우리는 다독이는 손길이 많이 필요한 때다. 그리고 내안에 도적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깨어서 마음을 갈무리해야 한다. 우주의 질서처럼 서로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아픔은 위로하고 공유해야 낫다. 많은 사건이 일어나나 작은 진실의 한 조각이 역사가 된다.

 

  산업화를 지나 정보화 시대로 오면서 사람들은 조급하게 경쟁하면서 더 약삭빠르게 이익만을 탐하게 되니 곡진한 사랑을 나눌 기회가 적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이럴 때일수록 밖으로 편다면 얼마나 마음이 따스하고 가벼워지겠는가.

 

  모델은 손으로 멋과 개성을 맘껏 표현해 낸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 것임에도 그걸 어디 둘 데가 마땅찮고 멋쩍다. 언젠가 TV에서 선원들이 멸치 그물을 힘차게 터는 몸짓과 그것을 닮은 지휘자의 포르테 시모(Fortissimo) 사인을 대비시켰다. 귀하고 천한 손이 따로 있을까, 무언가 자기 일에 열중하는 손이 아름답고, 즐겁게 일할 때 손이 가장 편하지 않던가?

 

  안경 때문이긴 했어도 문자를 보내놓고 나중에 화들짝 놀랄 때가 간혹 있다. 물론 받침을 붙이거나 떼면서 읽겠지만, 끝이 뭉뚝한 손가락에 나도 불만이 많다. 손가락이 길쭉한 사람은 대개 몸매도 늘씬하고 피아노를 치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면 어딘가 여유로워 보인다. 나는 뭘 입어도 태도 안 나고 어렵사리 찍어 보내는 문자, 너마저 오·탈자라니!

 

  그래도 멀쩡한 손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 몸에 붙은 만능도구다. 매끄러운 손등과 두꺼운 손바닥, 모공과 지문은 제 모습을 조금씩 줄여가며 서로 만나고, 손끝과 손톱은 의지하며 일을 도모한다. 어디 비단 손뿐이랴. 우리 몸은 지체가 유기적으로 만나는 과학이고 예술이며, 융합과 통섭의 극치라 할 것이다. 이런 좋은 몸으로 악한 생각을 도모하며 불의의 도구로 쓰일 것인가.

 

  아버지의 손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옥을 짓던 손이요. 무논에서 쟁기질을 마치고 누렁이의 등을 쓰다듬던 손이며, 잔칫집 마당에서 창부타령에 장구채를 잡으시던 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내 유년시절 회초리를 잡은 손이다.

아예 굽은 기르매 가지!’

메뚜기도 유월 한 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아버지의 음성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내가 반듯하게 자라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은 이 밥상머리에서 나온 것이라 여기고 싶다.

 

  내 짜리몽땅한 손은 70년대 공사판에서 제격이었다. 콘크리트 벽은 대부분 인력으로 뚫었다. 배관공 시절에 아침에 벼린 정()이 저녁나절에는 두어 치는 족히 짧아졌다. 망치로 수천 번을 내리치고 또 치면 바위도 패이고 무쇠도 닳는다. 정의 머리가 처음에는 옆으로 뭉개지다가 차츰 양 뿔처럼 말린다. 날카로운 끝이 손등을 파고들기 전에 뒤집어서 까냈다.

 

  그래서 유럽 건축물의 석재기둥에 양머리 모양의 장식을 보면 나는 정에서 나왔다고 늘 주장하는데, 경험이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상상의 폭을 넓힌다.

물론, 좋은 작품은 완성도에 있겠으나, 대부분 자연에서 받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심상에 작가의 개성을 약간 더한 것뿐이리라.

 

  내가 비록 아둔하나 박복하게 생겼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으니 조상의 음덕이요, 물려받은 재산은 없지만 아름다움을 보는 눈과 건강한 손이 있으니 이 또한 귀한 선물이 아니던가.

 

  오늘도 고요히 손을 모으니 모든 것이 감사와 은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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