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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수 필

대지의 귀

by 山海鏡 2017. 2. 1.

大地의 귀

황영원

 

   닭이 울었다. 추녀를 분간키 어려울 만큼 아직 깜깜한데 이 적막을 찢는 저 까마득한 고성! 누가 저렇게 절박한 소리로 울게 하는가? 어설픈 첫울음을 시작으로 고요하던 마을이 잠시 소란스러웠다. 잠결인데도 목을 절룩거리며 질러대는 그 울대의 통증이 또렷이 전해져 왔다.

 

  인체의 오감 가운데 소리를 듣는 청각은 상당한 호소력을 가졌다. 몸이 천 냥이라면 눈이 구백 냥이란 말이 있지만, 감정의 소통은 모름지기 귀가 으뜸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말이 생성되는 성대는 머리보다 가슴에 가깝다. 예전에 무대조명 분야에 종사할 때 전문가들은 무대의 생명은 무엇보다 음향이 좋아야 한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의 귀는 억지로 막지 않으면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관심이 다른 데 가 있으면 소가 앞을 지나가도 모른다.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에 귀가 절벽인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할매요! 진지 드셨니껴?" 하고 물으면, 들고 계시던 바나나를 내밀며 "빠나나요? 딸이 사왔니더!" 하고 웃으신다. 그런데 침대에 붙은 접이식 식탁을 잘못 젖혀 큰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며 천둥 치는 소리 같다고 나무라신다. 소리라도 정도를 넘으면 폭력에 가깝다.

 

  오랜 과거로 들어가면 우리의 사고는 신화처럼 유동성을 갖는다. 지난해 가을 지인과 경주 분황사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한 우물에서 나는 발을 떼지 못했다. 커다란 바위를 뚫어서 만든 특이한 돌우물(護國三龍變漁井) 때문이었다. 우물 안은 촘촘한 스테인리스 망으로 막혀있지만, 수질이 깨끗하여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석정의 둘레석이 빗물에 패이고 모서리가 닳은 흔적은 지나온 세월을 짐작게 한다. 만일 그 우물의 가림막을 열고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더라면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끼 낀 서늘한 우물의 벽과 깊은 수면 저편으로 하늘에 거꾸로 매달린 너를 만났을 것이다. 내친김에 두레박이라도 있어서 시원한 생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래된 유물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유약한 인간의 본성이다. 비록 이 우물은 제의 祭儀를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둘레석의 마모상태를 봐서 사람이 먹는 우물로 더 많이 사용되었을 것 같다. 우물은 지상에 세워진 탑과 달리 땅속으로 내려갔다. 밝음은 어둠에서 나오고 높은 것은 낮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이 낡은 한 점 유물에는 시원을 향한 아득한 동경과 끌림이 있다.

 

  상상은 생각의 꼬투리를 따라 자유롭게 펼쳐진다. 계림과 반월성 주변의 벌판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고 이 우물 역시 둘레석이 낡아진 것만 제하면 과거와 비슷할 것이다. 정화수를 떠서 보광전에서 구국 기도를 올리는 원효를 만나고, 우물에 제 얼굴을 비춰보는 수줍은 만덕의 앳된 모습과 그녀의 어깨너머로 비치는 하얀 뭉게구름과 옷고름을 흔드는 산들바람에 풀꽃 향기가 흩어진다.

 

  우물의 수면은 물 위의 세계와 물 아래의 세계를 나눈다. 이 경계는 살아서는 건널 수 없는 신비의 세계요, 항상 열려 있어서 세상의 온갖 소리를 다 받아들이는 얇은 고막이며, 신화의 세계로 통하는 미지의 문이다. 우물은 예로부터 하늘-인간-바다를 이어주는 신령한 통로의 역할을 해 왔다.

 

  신라의 우물의 특징은 아랫단은 허튼층쌓기를 시작으로 조금씩 넓혔다가 중간쯤에서 차츰 좁히며 올라간다. 위로 올라갈수록 돌의 모양은 가지런하고 층계는 뚜렷이 드러난다. 깊이는 십여 미터에 폭은 1.2m 정도인데 상단은 1m가 조금 못 되게 조붓하다. 지표 가까이 우물 정자나 입 구 자 모양으로 장대석을 앉히고 그 위에 둘레석을 얹는다.

 

  여기서 문양을 아로새긴 둘레석보다 그 아래 장대석을 눈여겨볼 일이다. 허다한 아랫돌들을 아우르고 둘레석을 떠받치므로 허리와 같다. 만일 이것이 부실하면 아랫돌은 이탈하고 위에 얹힌 둘레석은 기울어진다.

 

  지난밤 광화문 앞 옛날 육조거리는 세월호의 사라진 일곱시간을 밝혀야 한다는 촛불집회가 있었다. 대개의 통증은 아플 만큼 아픈 후에 가라앉는다. 그래서 이 사태가 급조되어 덮이길 원치 않는다. 정확한 원인 규명과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우물의 장대석을 찾고 있다.

 

  내 고향 후포리는 첫닭이 울면 대게잡이와 문어잡이 어부들이 항구의 허름한 식당에 모여 더운 국밥을 후후 불며 떠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승선을 기다린다. 떠날 채비를 하는 배들의 디젤기관에서 경쾌한 소리가 난다. 자기 일에 충직한 모든 소리는 참되고 정겹다.

 

  첫걸음은 허튼 걸음일 경우가 많다. 원효가 요석을 만나 파계의 길을 걸었으나 후일 더욱 정진하여 소중한 유산을 남긴 것처럼 우리는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고 후회만 할 일은 아니다. 청년의 때에 가졌던 야심 찬 포부와 계획에 성긴 곳이 얼마나 많았던가? 진정한 내 것을 찾고 변화하며 여기까지 좁혀오지 않던가?

 

  빈 수레는 요란하나 목적을 가진 적당한 짐은 걸음걸이도 진중하다. 급히 변침했던 조타수나 적재량 초과를 눈감아준 감독관도 알고 보면 우리의 이웃이요, 돈 가방을 붙들고 후들거리던 탐욕의 다리도 어리석은 우리의 양심의 어두운 단면이 아니던가? 부정과 태만이 누적된 세월의 외줄 타기 관행이 일순간 뒤집혔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울어야 하는 시간에 운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냐? 마치 허튼쌓기로 시작한 우물에 장대석과 둘레돌과 같이 진득하게 눌러줄 무엇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하다. 올라갈수록 우리도 서로의 어깨를 겯고 샘처럼 맑아져야 한다.

 

  하루의 축복도 모자라 열흘 미래를 꾸어 오는 어리석은 어른이 되어선 안 되고, 아침이 왜 이리 더디냐? 해가 왜 아직 뜨질 않느냐? 조바심하며 불평하는 소리에 귀를 빼앗기지도 말자. 헛것에 휘둘려 정작 무엇이 큰일인지 알지 못하고 우는 모습 때문에 아프다!

 

  조국의 산하가 과도한 흔들림으로 다시 위태롭다. 배가 뒤집히는 위기의 순간 잠시 균형추가 되어서 승무원들의 탈출을 돕고 가라앉은 어린 영혼들이 불쌍하고, 두 눈 멀쩡히 뜨고 그들을 수장시킨 우리가 한없이 부끄럽다. 그들의 통곡 소리를 당신은 들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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