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나갈 때 한 번 기도하고,
바다를 항해할 때 두 번 기도하고,
결혼을 할 때 세 번 기도한다고 했던가?
나는,
오늘 아침 치과에 사랑니를 뽑으러 나가서 세 번이나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치과 문을 들어서면서 병원과 간호사와 의사들을 위해서 한 번 하고. 사랑니가 순적히 발치 되어 주기를 바라며 또 한 번 기도했었다.
마취 주사를 놓고 중간중간 간호사가 와서 치아와 입술에 핀셋을 대어보며 여기와 여기가 느낌이 다르냐고 몇 번씩 물어보고 그리고 십여 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감각이 살아 있었다.
시간이 경과 해도 변화가 없어 마취가 잘못되어 생니를 뽑히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기 시작하자 또 한 번 마취가 속히 되게 해달라고 졸라대었다.
이 무슨 기도의 남발이란 말인가?
그러면서 걱정이 되면서도 점차 감각이 둔해지자 주변을 슬슬 둘러보았는데 수술대 옆 모니터에는 내 치아 파노라마가 올라와 있었다.
그 사진을 바라보다가 옛날에 우족탕 먹다가 울었던 생각이 또 났다.
소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고기가 질겨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이가 아파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그때는 한창때라 돌인들 녹지 않았을까.
어쩌면 저렇게 공학적으로 잘 만들어졌을까 하고 생각을 이어가다가 그 발굽을 만든이(창조자)의 치밀하고 정교함을 생각하자 눈물이 나도 몰래 핑 돌았다. 난 공학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체를 잘 아는 의학에도 거리가 멀고 더군다나 남의 골상을 보아주는 점쟁이도 아니다.
난 원래 눈물이 잘 난다. 음악을 듣다가도 그렇고 시를 읽다가도 그렇고 남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연동작용이 참 잘 일어난다. 아마 TV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열정적으로 연기하던 내가 좋아하는 서민정만큼이나 눈물이 많을 것 같다.
왜냐하면
족발을 보면서는 그 소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발목뼈가 발굽과 연결되면서 중력을 흡수하고 적절히 분산하도록 접합부가 복잡한 요철 모양으로 결합 되어 있었다.
그런 결합을 자연이 만들었다? 아니면 소의 부모가 만들었다? 아니면 초기 포유류의 선조가 만들었다?
아니다. 나는 창조론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오늘은 또 왜?
내가 내 얼굴의 골격이 찍힌 X 선 사진을 보며 한참 상념에 잠겼었는데 마치 어느 봄날, 둥그런 밭고랑 위에 뿌려놓은 무나 배추의 싹이 턱뼈 위에 가지런하게 자라난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이 연결되자 또 촉촉한 감사가 넘쳐났다.
간호사가 왔다.
그녀는 마취할 때 아파서 눈물을 비치는 것으로 착각하여 나를 어린아이 같다고 놀리지나 않았을까 ?
내 나이 지천명에 들어 선지도 두 해가 다가오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아직 철없는 어린애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생각과 행동을 생각해 보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을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