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떠난 크루즈여행
신정연휴와 감기 덕분에 여러 날을 쉬었건만 이틀을 출근하고 또 크루즈 여행을 간다고 나서자니 애들이나 회사 보기에 좀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산악회의 연중 행사로 이미 오래전에 약속이 되었던 터라 그리 눈치보지 않고 나서게 되었다.
산악회는 1년에 한두번씩은 해외등반을 하는 특별한 스케쥴을 가지고 있는데 지난해는 중국의 황산과 백두산을 다녀왔고, 또 일부는 히말라야 등반을 가기도 했었다. 아직 초년생에 지나지 않은 우리는 백두대간 정도만을 마쳐도 대견하다 하겠다.
목요일에 풀로 야근을 하여 무지 바쁜 시간을 보내고 금요일 한낮에 집에 왔다. 4시반에 분당에서 일행을 만나 그들과 인천항으로 갔다 인천에서 제주로 약13시간동안 야간에 운항을 하고, 월수금 인천에서 출발하고, 화목토는 제주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2등실인데 2인 왕복 28만원인데 이미 표를 집행부에서 예매를 해 두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온통 등산객들 뿐인것 같았으나 다른 이들도 끼어 있었고, 배에 트럭도 승용차도 거침없이 들어간다. 우리가 타고갈 오하마나호는 6,300톤이고 승객은 약 천명 정도는 족히 실어나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승강대를 올라 안으로 들어서니 에스컬레이터가 나오고 레드카펫이 깔려있는 좀 넓은 로비가 펼쳐졌다. 금장을 한 핸드레일이 통로를 이리저리 만들고 있었고 통로 양측으로는 주로 객실이다.
옆으로 매점과 커피� 샤워장 그리고 세면장과 화장실이 있었고 가운데로 회전해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1등실은 침대방이고, 2등실은 2층 침대, 3등실은 마루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배 속에 이렇게 멋진 호텔과 세트장을 만들어 넣어두었을 줄이야 말로만 듣던 일들을 눈앞에서 목도하니 감회가 새롭고 워낙 육중한 배라서 흔들림이나 요동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객실 내부를 안내 받아 복도를 따라가니 호실별로 이름표가 알기 쉽게 붙어 있었고 안에는 1인용 침대가 2층으로 오밀조밀한 골목을 따라 가지런히 붙어 있었고, 일단 짐을 풀고 실내에 준비된 슬리퍼와 가벼운 차림으로 용무를 보고 나니 식사시간이 되었다. 육지나 별반 다른게 없는 식판 배식이었고 다만 식탁이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식권을 구입해서 한줄로 서야한다.
식사를 좀 서둘러 마치게 시키더니 다음 행사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한단다. 각자 자리에 짐들을 다시 정리하고 내일 산행지도를 챙기고 코스와 편성인원을 맞추다 보니 스피커에서 밖으로 나오라고 안내를 한다.
배는 조용했는데 갑판에 나서자 거칠고 매서운 바람살이 얼굴을 때렸다. 조심스럽게 난간에 손을 대고 아래를 보니 흰 거품이 뒤로 사정없이 흘러가고있고 배가 이렇게 쏜 살같이 달리고 있는 중인걸 몰랐었다.
갑자기 타이타닉 영화의 차거운 바다가 생각났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몇 분내 얼어 저 세상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이처럼 간접경험이 오히려 현실의 위협을 더욱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는것 같았다.
잠시후 선미 갑판에서 반짝이는 조명과 함께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디스코 타임이 잠시 열렸는데 아내는 어린 소녀같이 너무도 좋아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잘 안추던 춤도 추고 타이타닉 주인공들의 날으는 새 흉내를 내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기도 했었다. 아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이전에는 본적이 없었다.
바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모두 열.. 아홉.. 여덟 그렇게 제로까지 한 목소리로 카운터다운이 끝나자 일제히 솟구치는 섬광의 불꽃들이 밤하늘을 가득 수놓았고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기에 충분한 전율이 전해졌다.
또한 큰 굴뚝에서 흘러나오는 기관실의 무겁고 낮은 톤의 엔진소리와 5,000 발의 폭죽소리가 어우러지며 막혔던 가슴이 후련하게 뚫렸다.
10시가 되자 이밴트홀에서 라이브를 한다고 또 방송이 나오자 식당으로 올라갔는데, 거기 식당이 호프집으로 변해있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앉아서 호프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것도 좋지만 가끔씩 흔들리는 움직이는 파도위에서 라이브를 즐긴다는 기쁨이란 참으로 묘한 스릴같은게 있었고 시간이 째깍째깍 가는게 정말 아깝기까지 했었다.
좀 취기가 오르고 분위기가 엎되자 부루스 음악과 디스코음악이 번갈아 나오자 이미 여러 커플들이 벌써 스테이지 앞에 진을쳐 섞이고 뒤엉키며 야단이 났다. 뒷자리나 중간 할 것 없이 모두 일어서서 한판씩 흥에겨워 춤을 추느라 한창인데 옆사람 눈치 보는 사람은 아직 술이 취하지 않은 샌님이나 구경꾼들이다.
한판 소동이 벌어지고 난 후 다시 침실로 내려왔다. 이미 의자에 이불을 쓰고 누워있는 노숙자 같은 사람도 있었고, 3등실은 카드, 고스톱과 술판이 담배연기와 함께 꼭 큰일 치르는 집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중에도 이리저리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미 골아 떨어진 선수들도 있었다.
객실로 들어오자 우리도 어김없이 술판이 벌어졌다. 각양 각색의 병에서 부터 퍼지는 색다른 알콜 향이 객실 내를 진하게 어지럽혔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밤새워도 지치지는 않겠으나 이미 2시가 지나간다. 내일 빡세게 치고 올라야 할 눈덮인 한라산이 있어서 이쯤해서 소등을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