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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문 학/수 필

그후에 본즉

by 山海鏡 2007. 4. 1.

지금도 많은 건축 디자이너들과 과학자들은 웰빙을 위하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우리는 첨단의 홈 오토메이션에 홈씨어터, 멀티 미디어로 세계의 언어가 다른 문화와 실시간 교감하며, 헬스실, 음악 감상실, 접견실, 회의실, 서재, 수집품 진열실 등 다양한 인테리어 공간도 생각할 수 있으며, 외부에도 갖가지 조경시설과 전용풀장 등으로 쾌적한 분위기를 얼마든지 연출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 전 2: 10

 

얼마전 판교신도시의 아파트 분양 당시 전매차익을 노린 투기꾼이나 떴다방들의 불한당 같은 행각을 보면 알 수있듯이 주거환경이 괜찮고 목 좋은 아파트는 인기가 참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 문화의 발전과 병행하여 이기적 문화의 편중은 사람들을 점차 나태하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빠지게 하는 것이 분명한 것같다. 예를 들면 리모콘이 없을 때 느끼는 불편함 같이 기호에 맞는 채널을 쉽게 선택하는데 우리가 너무나 익숙한 것처럼 이런 습관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는가.

 

요즘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자기의 생각이 옳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으나 그들도 범죄를 쉽게 저지르고, 성도들도 순한 양이나 교회 문을 나서면서 양심에 코트를 걸칠 채비를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생활과 가치관의 혼돈은 너무나
생활이 편리한데서 발생하는 물질문명의 역기능들이 아닌가 짚어본다.

 

함께 살고 있지만 대화가 없는 단절, 문만 닫아 걸면 완전한 공간적 격리, 앞집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무관심, 삼류 연속극 속에 자신의 위상을 찾는 사람, 다 아는 듯 하지만 애꾸눈을 가진 어리석은 지식인,

서로가 교정안된 일그러진 자화상을 내밀고 거침없이 분을 토하며 자기 말만 지껄여 대는 벽창호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서 어떤 삶의 본을 보여야하나?
주님은 선조 솔로몬을 통하여 무절제한 향락의 추구도 결국 헛되다 증거하고 계신다.

"그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 11

찡그린 얼굴
보이기 보다 웃음 짓는 모습으로 서로를 이해 해주고, 우리도 가끔은 위로 받을 때가 있으므로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는 여유를 갖는다면 세상을 더욱 폭넓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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