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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수 필

맡기고 돌아서며

by 山海鏡 2007. 7. 3.

아침에 아내는 새끼 딸린 암캐 마냥 까칠해 있었다.

군에 먼저 보낸 친구들 얘기 듣고 간접 체험한 덕분인가 무슨 말만 해도 톡톡 쏘아붙여 당최 말 붙이기 어려웠다.

 

남자들은 배 아파 낳지 않아서 그런 기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섭섭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침 식사 때 식탁에 둘러앉아 기도했다.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하고 2년 후 이 자리에서 다시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역경이 있을 때마다 지혜와 위로로 이길 힘 달라고...,

 

아들놈 친구들이 배웅하러 부대로 온단다.

오후 1시에 입소를 하는데 8시 반경에 나섰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차가 꽤 정체되었다.

부대 근처에 가까워지자 저만치 구름이 산허리에 감겨 있었다. 실감이 나는 듯 차창 밖을 유심히 살피며 공기를 파악하고 있었다.

 

입영소 골목은 분위기가 다르다.

형광 볼펜에서부터 후시딘, 소화제, 수첩, 알람 전자시계, 깔창 등등 다양한 소지품들이 즐비 되어 있다.

식당들의 호객 구호가 "주차장 완전무료 ! "란다.

전투복에 완장을 차고 철모를 쓰고 호각을 삑삑 여기저기 정신이 없다. 어미가 벌써 긴장이 되어서 쫄고 있는 듯했다.

 

1 년 먼저 군대에 간 춘섭이가 휴가를 내서 와주었고 아직 징병검사를 받지 않은 기일이 친구가 같이 왔었다.

어쩌면 친구의 입대하는 날에 맞추어 휴가까지 내서 올 생각을 했는지 기특하다.

시간은 일찍지만 점심을 미리 먹었다. 아내는 입맛이 없다고 음식을 입에도 안 대었다.

 

모두다 머리 깎은 놈 하나에 너덧 명씩 따라와서 정작 입소자들보다 군식구가 너댓 배 정도나 많은 것 같아 보였다.

연병장에는 사열대 앞으로 군악대가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나오고 있었고, 전투복차림의 단정한 군인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말했다. 나왔어! 겁먹은 외마디였다.

 

관전석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누구는 전화를 받으며 훌쩍거리고 있었고, 대부분은 이미 눈가가 불그스름하게 눈물 쏟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가족들은 5분 내 모든 인사를 끝내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부터는 물건을 주고받을 수도 없고 만나지도 못하게 됩니다." 메아리치는 확성기의 안내가 나왔다.

 

잠시 후 아들이 일어서며 엄마를 안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이별이 시작되었다.

짠한 시간이 흘러가고 경쾌한 군악대의 연주 소리와 환영사와 부모님에 대한 인사 등 모든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배고플 텐데 시원한 냉면이나 한 그릇 먹고 들어가자 했더니 입맛이 없단다.

정말 언제까지 굶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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