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이 나고 가슴이 불편해서 얼마 전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부친의 가족력도 있고, 젊었을 때 나의 화려한 경력도 있고 해서 문진을 받는 내내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공부에 특별한 재주도 없었거니와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보며 일찌감치 기술을 배워서 자립하기로 마음먹고 진학 대신 설비회사에 들어갔었다. 산업화 바람이 막 불기 시작했던 70년대만 해도 안전이니 재해예방이니 하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형편이 넉넉해서 지키는 데는 별로 없었고 시설이나 보호기구를 제대로 쓰는 사람도 드물었다.
용접가스가 가득 찬 곳에서 몇 개월을 지내다 보니 어느 정도 현장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어떤 날은 세관작업을 하러 더운 보일러의 연소실로 들어가서 쇠솔과 깡깡이로 문지르고 두들길 때는 무척 힘이 들었다. 마스크를 썼어도 검은 먼지가 코로 들어오고 사람은 이내 굴뚝 청소부 몰골로 변해 버렸다. 흘러내리는 땀은 물론 시야를 가리는 먼지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서 차라리 작업등을 끄고 안 보는 게 편할 것만 같았다.
수압시험을 마친 배관에 보온할 때면 암면 가루나 유리섬유 먼지가 땀 젖은 얼굴로 쏟아져 내렸는데 저녁이면 눈물이 나고 목이 따끔거려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이런 날 저녁은 사장이 와서 돼지비계를 썰어놓고 막걸릿잔이라도 돌리게 되면 사람들은 보약이나 되는 양 위로를 삼았으나, 나는 이런 것들이 쌓여서 나중에 필시 어떤 대가를 치를 거라고 늘 생각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기술을 배운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이 모든 괴로움을 참을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녹색 성장을 외치며 그동안 개선된 근로조건만큼 우리의 기술 능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가끔 TV에서 광부로 일할 당시에 까만 땀과 까만 눈물을 흘렸다던 진폐증 환자의 고백도 들어 보았고, 공단 주변의 심각한 환경오염의 실태도 보았으며, 또한, 오래전 파월장병의 고엽제 후유증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습생이 노후의 웰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했다. 만일 오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골똘한 생각 때문인지 거울 속의 그가 예전보다 더 낯선 모습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죄질이 나쁜 사람의 법정구속같이 병원의 외래에서 수속을 끝내고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때도 종종 있으므로 몸을 씻고 깨끗한 내의로 갈아입었다.
장기 입원이라도 하게 된다면 사무실에서 내가 해 오던 일을 다른 사람이 할 테지만,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자존심을 세우던 그 일을 누군가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척척 해내며 여태껏 상사라고 굽실거렸다는 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슨 망신이랴! 더욱 안 될 말이지만, 아내가 표정을 애써 감추며 말머리를 돌리다가 마침내 '당신 하고 싶은 것 뭐예요?' 하고 물어온다면 과연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만감이 교차하고 이제껏 무엇에든 전력을 다하지 못한 내 나쁜 버릇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늘 혼자서 꿈꾸어 오던 것들이 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어느 계곡을 헤매거나, 바다의 반짝이는 물 비늘이 내려다보이는 해변의 언덕을 거닐곤 했었다. 그곳에다 집 칸이라도 장만하고 텃밭도 가꾸면서 주말에 아이들이 오면 우리가 기른 것들을 자랑스레 내어놓고 놀다 갈 때는 한 보따리씩 싸 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끔 아내를 데리고 읍내로 나가서 그간 사느라고 골몰하여 챙겨주지 못했던 정도 나누면서 개봉 영화도 봐주고 또, 얼마 동안 쓸 자질구레한 생필품 몇 가지를 사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는 저녁 무렵 서산에 걸린 호박색 노을을 함께 바라보리라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원하지 않는 이 잔인한 일들이 느닷없이 들이닥쳤거나 혹은 이미 시작되어버린 건 아닐까?
이 무서운 상상을 부정하면서도 검은 유리거울 뒤편에서 꿈틀거리는 단상이 나를 더욱 고요하게 만든다.
아내가 운전하고 나는 환자 마냥 조수석에 타고 병원까지 오는 길에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로비에는 멋진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링거를 매단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뒤섞여 로비의 가운데를 향하여 음악회를 관람하고 있었고, 위층 복도에 누군가는 침대에 누워 급히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저렇게 기쁨과 슬픔이, 아름다움과 추함이 저들의 어깨 사이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 섞여 있는 것일까.
"숨 깊이 들어마시고요... 숨참으세요... 삑!"
영상센터에서 가슴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와도 우리가 여유 있게 온 탓으로 예약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내가 커피를 뽑아와 반씩 나누어 마시며 그들 틈에 끼어 연주하는 곡을 더 듣고, 로비 뒤편에 전시된 미술품도 찬찬히 구경하였다.
전광판 앞에서 호명을 받고 진료실로 들어서자 아내도 뒤따라 들어왔다. 조금 전에 찍은 사진과 검사 결과를 모니터로 살피던 의사는 오래전에 들어왔던 역겨운 반말이 아닌 친절한 얼굴로 "표본과 엑스레이는 정상입니다. 癌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고 한참 동안 내 얼굴을 살피며 따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동안 준비했던 마음 단속 때문인가 희비가 크게 교차하지는 않았지만, 창백했던 얼굴에 볼그레 기쁨이 돌아왔다.
판사만 선고를 내리는 게 아니다.
폐암으로 의심하여 검사를 의뢰했던 의사의 '이상 없음!'의 선고에 대하여 나는 다시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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