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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수 필

박제

by 山海鏡 2007. 7. 9.

시골 약간 번잡한 포구의 장날(후리포장날)이었다.

너무나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라 가물거리지만 잊을만하면 생각해 내곤 했었던 사건이라 

그 부분만큼은 그래도 선명히 남아있다.

 

꽁치 그물 냄새와 어물전 생선 냄새 뻥튀기 터지는 소리...,

그보다 더욱 진하게 기억에 밴 것은 큰 배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와 역겨운 기름 냄새다.

배와 배 사이의 바닷물이 하늘을 비춰 울렁거리지만, 통통배 기름은 무지갯빛으로 그 위를 번들거리고 있었다.

찌든 어판장의 오래된 냄새와 버려진 생선 조각에 덕지덕지 붙은 쉬파리 소리도, 늙은 쥐의 굼뜬 동작도 무삭제된 체 그대로 남아있다.

검푸른 바다에 떠있는 배는 육중하게 삐걱 거렸고. 그 아래 물속에 잠긴 배의 옆으로는 파래와 따개비가 붙어 있어서 작은 물고기들이 그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물론 엄마의 손을 잡고 갔었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서부터 혼자 그 길을 찾아가곤 했었다.

학교를 지나고 목재소를 지나고 방파제를 지나고 예배당을 지나고 경찰서를 지나고 시장을 지나고 얼음공장을 지나야 이모네 집이 있는데 족히 반나절은 걸린다.

중간에 시장을 지나는 길이 있고 어판장을 지나는 두 개의 갈레 길이 있는데 나는 냄새는 나지만 어판장길을 언제나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시장 쪽 길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엄마 손을 잡고 그 길을 지나다가 세상에 태어나서 다섯 살 평생 그렇게 놀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어느 옷가게 유리창 안에 어린아이를 바짝 말려서 옷을 입혀 놓았기 때문이었다.

난 그 아이가 그렇게 무서운 일을 당한 것을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엄마를 잃으면 저렇게 되나 보다.

 

그 앞을 지날 때면 으레 엄마 뒤쪽으로 숨어서 가거나 손을 꼭 잡고 가거나 저만치 떨어져서 지나갔다.

파란색 눈은 뜨고 있었고 간지럽혀서 죽였는지 웃고 있었다.

입고 있던 옷이나 진열된 어떤 옷들도 지금 이 하얀 백지 위에 아무것도 옮겨 적을게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그때 파란 눈의 아이를 말려 놓은 박제(어린이 마네킹)의 잔혹함을 생각하며 몸서리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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