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빈 둥지
황 영 원
딸그락딸그락 솥에다 가위를 삶았다.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학교를 파하고 돌아왔을 때는 오후 두 시쯤이나 되었을까 해는 중천에 떠 있고 날은 약간 더웠다. 하복 상의 단추를 끄르며 마당을 들어서니 어머니가 집에 계시는지 댓돌 위에 어머니의 신발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신발 속에 들어 있는 마르지 않은 풀잎을 보고 조금 전에 들에서 돌아오셨다는 것을 알았다.
이맘때면 배가 고파질 시간이라 풋고추에 식은밥 한술 달라고 할 참으로 어머니를 부르며 안으로 들어서는데 어머니는 방에서 한 손으로 배를 감싸고 몹시 불편하신 얼굴로 계시다가 나를 보자 나직한 목소리로 솥에 물 붓고 가위를 잘 삶아 오라고 겨우 말씀하셨다. 아마 산통이 아침부터 있었지만, 지금까지 참고 밭에서 일하시다 서둘러 들어오신 것 같았는데, 안방에 미리 준비해둔 이것저것을 꺼내며 혼자 해산 채비를 서두르시던 참이었다. 마치 암캐가 제 보금자리에 새끼를 낳을 때처럼 담담하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그렇게 감당하실 작정이셨다.
철없던 시절에 시집와서 살림살이를 배우면서 하나둘씩 자식들을 낳다 보니 이제는 몸을 푸는데 자신이라도 붙으셨던 것일까, 아니면 쉼 없이 자라나는 들판의 잡초같이 매일 앞으로 닥쳐오는 고단한 일상 속에서 해산이란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여기신 것일까.
가방을 마루에다 내던지고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서둘러 바가지로 서너 번 물을 퍼다 붓고 아궁이에 성냥을 그어 던졌다. 허둥댈수록 불은 잘 붙지 않았고 황 칠이 벗겨진 낡은 성냥 옆구리를 톡톡 그을 때마다 성냥개비들만 밖으로 튀어나왔다. 솥에 호젓이 들어가 누운 헌 가위는 어머니께서 쓰시는 호미 날 같이 무디지만, 오늘만큼은 목욕재계하고 큰일을 준비하는 유사(有司) 같은 대접을 받는다.
우리 사 남매 키워 오면서 해어진 양말 뒤꿈치를 오려서 덧대고, 기저귀 감 떠와서 적당히 마름질하고, 동생 숙제할 때 색종이도 오리고, 가을이면 말린 고추 꼭지도 따면서 부러진 절름발이는 어머니의 손같이 참견하는 곳도 많았다.
요즘 같으면 호텔 같은 병원에서 남편에게 응석을 부려가며 편하게 분만을 하겠지만, 자리에라도 누워서 시어미의 위로나 산파의 도움을 받는 호사도 아니고, 어머니는 마치 뒷간서 볼일 보듯 그저 혼자 쪼그리고 앉아서 아이고!.... 하고 내뱉는 외마디 신음이 전부였다.
한참 후에 어머니는 부엌에서 불을 지피고 있는 나를 불러들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런 일을 겪어보지 못한 열여섯 살 철부지로 당황스럽고 민망스런 자리에서 더욱 안절부절못하였는데, 응급 결에 양수를 뒤집어쓴 아기를 받게 되었다. 강아지만 한 작은 몸집이라 인물도 무엇도 볼 것 없는 그냥 눈을 감고 있는 못난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몸을 돌려 아이를 받아 들고 "나오느라고 욕봤다. 이놈 자식!"
어디가 그리 예쁜지 새끼에게 반가운 첫 인사를 건네는 입가에는 고통을 잊은 듯 미소가 스쳐 갔다.
반가운 상봉이 잠깐 끝나고 얼굴을 닦아 주는데 막내는 울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기쁨의 탄성인지, 고달픈 인생 첫걸음의 표시인지 불끈 쥔 두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끄아아 끄아아!" 크게 울어대었다.
어머니는 건강한 남동생을 막 순산하신 것이다.
가까스로 불을 지핀 움푹한 정지의 그을린 아궁이 속에는 이글이글 불꽃이 타오르고, 산모의 배처럼 둥그런 솥뚜껑은 만삭 아이의 발길질처럼 들썩거렸다. 뜨거운 물로 몇 번을 소독한 대접에 가위를 건져 담고, 더운물을 담은 대야와 함께 산파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빨간 핏덩이에 달린 탯줄을 배꼽에서 두 치 남짓 정도 남기고 실로 두 군데를 꼭꼭 묶은 다음 그 가운데를 소독한 가위로 잘랐다.
어머니가 애기 머리를 받쳐 들고 대야의 따스한 한 물로 씻기고 배내옷을 입히기까지 그는 소리를 지르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맨 몸뚱어리로 모든 것을 다 맡긴 채 바들바들 떨며 울 수밖에 없었다. 솜으로 싼 푸른색 핏줄이 비치는 배꼽은 저고리 속으로 조심스레 밀어 넣고 기저귀에 여러 겹 보물처럼 싸서 준비한 깨끗한 새 요 위에 눕혔다.
어쩌면 포도나무에서 포도 꼭지를 잘라서 광주리에 고이 담거나 밭에서 뽑은 무의 무청을 자르고 흙을 씻음같이 탯줄을 끊고 정한 물로 씻긴 후에 그 고마운 선물을 다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막내는 밝은 세상 밖으로 나온 첫날이고 그날 이후로 어머니의 애기 둥지는 말끔히 비우셨던 모양이다.
출산과 부엌살림은 정녕 여자들의 굴레인가. 어머니와 함께해 온 부엌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막내를 낳을 당시만 해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밥도 짓고 군불을 넣기 위해 부엌은 화목을 수북이 쌓아 놓을 만큼 거칠고 넓었다. 부엌은 낮고 굴뚝이 높아야 온돌방은 불을 잘 들이기 때문에 부엌은 두 계단만큼 깊어서 여름 장마철이면 질척하게 물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근래 들어 가스레인지와 전기밥솥과 냉장고를 장만하면서 한쪽에 쌓아둔 화목도 오랜 세월 정들었던 어머니의 분신 같은 무쇠솥도 밖으로 퇴출당하였고, 그렇게 깊고 어둡던 정지는 안방만큼 높아지고 훤하게 새 단장을 하지만, 어머니는 해마다 조금씩 물기가 마르고 낮아지며 무쇠솥과 같이 속을 비워내고 계셨다.
그 시절 노랑 주둥이를 벌리던 새끼들은 하나씩 자라서 제각기 도회지의 새 둥지를 틀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고향집을 홀로 지키신다.
아무도 없으니 편해서 좋고, 친구들이 여기 다 있어서 심심치 않다. 너희 집에는 내가 힘이 없을 때 올라가마 하신다.
낳으시며 겪은 해산의 고통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가물가물 잊혀 가시겠지만, 오늘도 쓸쓸한 빈 둥지를 홀로 지키시는 어머니의 생각에 잠을 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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