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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학/신앙 에세이

해마의 뿔

by 山海鏡 2022. 7. 30.

수중 사진 작가 데이비드 박스터의 갤러리 (divephotoguide.com)

   향기로운 뿔을 가진 동물이 있다면 나는 사슴을 먼저 떠올린다. 향낭은 없지만 나뭇가지처럼 갈라지며 힘차게 위로 뻗어 오르는 뿔의 기상은 호기롭다. 무엇보다 수사슴이 걸음을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자태에서 고상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사슴의 뿔은 매년 4~5월 무렵 떨어져 나가고 새 뿔이 난다. 처음에는 털로 덮인 연한 피부에 싸여 있으며 속에는 혈관이 많은데 이것이 한약재로 귀하게 쓰이는 녹용이다. 녹용은 청명을 달포쯤 지나서 소만과 망종 사이에 자른다고 한다. 자연 상태로 차츰 각질화되면 사슴은 나무나 바위에 문질러서 피부를 벗겨내고 뿔을 다듬는다.

 

  바닷속에도 뿔이 있는 물고기 해마#1가 산다. 그리스 신화의 켄타우루스는 인간의 하반신이 말인 데 반해 해마는 말의 하반신에 꼬리가 달려있고, 유니콘처럼 길지 않아도 머리에 앙증맞은 정관이 하나 있다. 대개 뿔은 초식동물에게 공격보다 방어용 기재다. 우리말 '뿔'은 신라어 '서불(舒弗)', '서벌(徐伐)', '서발(舒發)'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뿔이 '우두머리', '위대함' 등의 의미를 내포하지만, 서양의 신화에서는 사악한 힘이나 마법 따위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고, 번제단 네 모퉁이에 달린 '제단의 뿔'은 하나님의 권능을 말한다.

 

  이렇게 훌륭한 도구도 덫이 될 수 있다. 켄타우루스는 성질은 음란하고 난폭하여 남의 것을 탐하다가 결국 술에 취하여 망하였고, 삼손의 능력은 데릴라에게 머리카락을 잘려서 두 눈이 뽑혔으며, 모리아 산의 사슴은 뿔이 걸려서 이삭 대신 아브라함의 제물로 바쳐졌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머리카락의 숱이 많고 수려한 용모를 가졌으나 역모의 길에서 나귀를 타고 도망치다가 머리카락이 상수리 나뭇가지에 걸려서 죽임을 당했다.

 

  허다한 뿔들 가운데 해마의 뿔이 마음에 끌리고 어여쁜 것은 그 작은 미물에게 배울 점이 많다. 꼿꼿하게 서서 헤엄치는 모습이 옛 선비를 연상시키며, 무엇보다 해마는 수컷이 암컷의 알을 받아 부화시키고, 출산 후에 다시 그 암컷의 알을 받는다. 대부분의 해마는 짝을 바꾸지 않는다. 그들은 산호나 해조류의 줄기에 꼬리를 감고 가만히 있다가 위에서 내려오는 먹이를 받는다. '많이 거두어도 한 오멜 적게 거두어도 한 오멜이다' #2 

 

  모든 매인 것들은 자신을 구속의 멍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마는 자신을 스스로 묶으며 사사로운 것을 탐하는 번쩍이는 비늘과 빠른 꼬리지느러미를 버렸다. 그들은 민첩함 대신 나무늘보의 손이거나 배의 묵직한 닻과 같은 겸손한 꼬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해마의 뿔을 '향기로운 관'이라 부른다.

 

  뿔이라도 뿔 같지 않은 건 해마 말고도 몇 있다. 더듬이 같은 기관으로 물체에 닿으면 안으로 쏙 들어가는 달팽이 뿔이 있고, 두개골이 융기되어 끝이 뭉뚝하고 피부에 털이 덮혀 있는 기린의 뿔이다. 요즘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나는 저들의 엉덩이에서 뿔을 찾는다. 만일 해마가 들었다면 이내 손부채질하며 한숨을 내쉴지도 모를 일이다. 손바닥만 한 등지느러미로 천천히 돌아서며 '때가 가까이 왔다'고 해맑게 웃어 보일 게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사막을 건널 때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하찮게 여겼다. 받은 은혜가 길어지면 당연한 권리로 여기며 감사가 사라진 자리에 불평이 생긴다. 그 탐욕이 가득한 육의 사람들이 결국 메추라기 고기를 삼키지도 못하고 진노의 제물이 되었다. 우리는 옳은 것을 가벼이 여기고 지름길을 찾는다. 불법과 탐욕의 아수라장을 깨닫고 여기서 속히 벗어나야 하겠다. 

 

  세상은 언어처럼 빠르게 지나가나 나는 언제나 해마에게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자기를 사랑하고 무례를 행하며, 자랑하며 교만한 사람을 주변에서 본다. 잠깐의 우월감은 느낄지 몰라도 남아있는 기쁨은 없다. 솔거의 이름이 오래 남는 것은 자신이 받은 선물을 지키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에 이른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직선과 대비되는 곡선은 힘이 있다. 구부림의 탄력성과 원만하게 협력하는 꼬리로 해마는 잘피 줄기를 붙잡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기다리며 뿔이 수풀에 걸리지 않도록 살피자. 여리고 성을 돌던 이스라엘의 군대가 힘차게 양각 나팔을 불 때  거대한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구원의 뿔을 의지하여 문을 나서는 자는 이미 승리를 한 것과 같다. 

주석

#1: 해마(海馬): 실고기과에 속하는 해마속 어류의 총칭으로 전 세계에 46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해마, 산호해마, 복해마, 가시해마, 점해마 5종이 보고 되어 있다. 크기는 통상 1.5~35.5cm 정도로 등지느러미를 이용하여 똑바로 서서 헤엄을 친다. 수명은 대략 2년 정도로 수컷의 육아낭으로 암컷의 알을 부화시키며 쉽게 짝을 바꾸지 않는다. 또한 머리 위에 왕관처럼 생긴 정관(coronet)을 가지고 있다.
해마를 보호하기 위하여 CITES에서 2004년 5월 15일부터 수출입 통제를 하고 있으며, 식재료, 한방재료 및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은 편이다.
  해마는 세계의 온열대 지방과 우리나라의 독도와 남해, 제주도의 수심이 얕은 바다에 두루 분포하고 있다. 약재 시장에서 말린 해마 1킬로에 천만 원에 거래되며, 관상용으로 팔기도 하고 임산부의 출산을 기원하는 선물로 팔리기도 한다. 크기가 중간급인 빅벨리해마는 국내 양식에 성공했다.
https://ko.wikipedia.org/wiki


#2: 오멜(Omer). 히브리어의 원뜻은 '보리 한 묶음'이다. 1 오멜은 에바 10분의 1로(출 16:36), 약 2.2ℓ의 고체량에 해당한다.

 


성명: 황영원
수필가, 시인, 그래픽디자이너
아하브 공저 외 다수
rtyt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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